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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들이 놓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중요한 성경의 가르침들이 적지 않다. 많은 세상적 교회들이 위선적이라고 비판을 받는 이유다. 그중 중요한 하나가 행함에 관한 것이다. 성경에 있지도 않은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을 지어내어 거짓으로 가르치다 보니, 행함에 관한 최소한의 관심조차도 잃어버린 탓이다. 적반하장격으로, 그들은 행위를 구원과 연결시키기만 해도 ‘이단’이라 정죄한다. 만일 그들 말이 맞다면, 이 글을 읽은 후에, 그들은 예수님과 사도 바울도 이단이라고 정죄하거나 혹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온 생각을 의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말과는 달리, 예수님은 말씀을 행하는 것이 크리스챤의 삶의 기초라고 까지 가르치신다. 성경 어디에도 이 원칙이 없는 곳이 없지만, 오늘은 누가복음 6장 46-49절에 나타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알아보자.

 

“왜 행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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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고 힐문하신다. 예수님을 “주여 주여” 하고 부른다면, ‘믿는 사람들’인데, 그들을 향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니 믿기만 하면 된다는 그들의 말은 어떻게 된 것인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즉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이 말하는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시지 않는가? ‘“주여 주여”한다고 다 믿는 게 아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 치고, 그 다음을 보자.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는 힐문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믿음만으로 구원받고 행위를 운운하면 ‘이단’이라는 그들의 말과 너무 다르지 않는가?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들의 말이 맞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단이란 말인가? 어불성설이고 궤변이다. 그들이 터무니 없이 틀린 것이다. 

 

행함은 삶의 기초

계속해서 47-49절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집의 기초에 비유하여 설명하신다. 그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기초를 튼튼히 하고 그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아서 큰 홍수가 그 집을 덮쳐도 쓸려가지 않는다. 그러나,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없이 흙위에 집을 지어 홍수가 그 집에 부딛히면 쓸려 내려간다. 행함이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건 말건, 마치 집을 모래 위에 짓는 사람과 같다는 것이다. 집은 그 사람의 인생을 상징할 터이니, 그것은 사탄의 침노 혹은 인생의 고난이 닥쳐왔을 때에 쉽게 넘어가 버린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구원이라는 배가 천국이라는 항구에 닿기도 전에 파도에 삼키워 파선하고 만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무엇이 무너지는 집과 짱짱하게 버티는 집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 ‘믿음이 있노라’ 하는 말이나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라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다. 그들이 언급만 해도 ‘이단’정죄를 하는 행함을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삶의 기초라고 하시지 않는가? 그들의 말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단’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단’일 리 만무하므로, 결국은 그들이 완전히 틀린 것이다. 

 

성경왜곡—행위의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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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들 중에는 사탄의 종이 되어서 알면서도 그렇게 거짓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제대로 배워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허무맹랑한 것이 성경인 것처럼 믿는다. 유명세만을 노리는 신학자들과 성경 대신 그들의 신학만을 공부하고 그게 성경인 것처럼 착각하고 무분별하게 가르치는 목사들의 탓이다. 그들이 무엇을 왜곡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잘 들어보라. 로마서는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분명히 말한다 (3:29). 그러나 여기서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했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5:9; 6:17-18).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말은 죄가 있어 죽어야 할 사람에게 그 죄값을 사해 줌으로써(죄사함) 죽음을 면하게 해 준다는 뜻이다 (6:7). 그래서 이를 두고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다”고도 표현한다 (5:10).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성경인 줄 아는가?

구원에 행위가 필요없다면,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이단’인가?

 

아무런 값없이 믿는 자에게 죄사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은혜다 (4:4). 은혜로 주신다고 하는 이유는 ‘이전에’ 한 행위에 대한 댓가가 아니라는 의미다 (4:4-8). 여기에 그 잘 못된 것을 유포하는 신학자들이 오해했거나 혹은 왜곡한 것이 있다.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그 ‘이전에’ 한 행위의 댓가가 아니라고 한 것을, 그들은 의롭다 함을 받은 ‘후에도’ 행위는 필요치 않다 혹은 중요치 않다고 해버린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의롭다함을 얻는 것, 즉 죄사함은 ‘이전의’ 행위—심지어 그것이 의로운 행위라 할 지라도 (디도서 4:4)—의 댓가가 아니라는 의미였는데, 그들은 그것을 오해 혹은 곡해하여, 구원받는 데 행위는 ‘언제든지’ 필요치 않거나 중요치 않다고 해 버린 것이다. 

 

로마서의 행위 강조

그러나, 사도 바울은 바로 그 다음부터 행위를 강조한다. 강조해도 엄청나게 강조한다. 2장6-10절에서는 결국 행위로 심판을 받음을 명시한다. 4장2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믿을 때에 의롭다 함을 받은 그 후에 무려 25년 동안이나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창세기에 기록된 그 25년 동안의 아브라함의 삶은 그냥 ‘믿었으니 구원받았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과는 천지차이다. 5장은 시작하자마자 행위를 강조하는데, 심지어 환란을 당하되 그것을 기뻐하기까지 하며, 그것도 그 사람의 인격이 될 때까지이고, 그렇게 형성된 크리스챤의 인격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구원의 소망이라고 말한다. 5장9절은 예수님의 피로 의롭다함을 받게 되었으니 이제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얻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 준다. 그리고 이어 10절에서는 구원을 받는 길이 바로 그의 삶이라고 함으로써,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죄사함은 구원의 완성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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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의 행위를 또 다시 강조한다. 2-4절은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합하여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그럼 무엇인가? 믿는다고 말이나 생각만 하는 것인가? 13절에서 자신과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 드리라고 하지 않는가? 즉 의를 행하라는 의미다 (요한1서 3:7). 17-18절에서는 더 자세히 설명하기를, 본래는 죄의 종이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교훈의 본, 즉 복음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즉 의롭다함을 얻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 즉 의를 행하여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22절에서는, 다시 한 번,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되어, 즉 의롭다함을 얻어,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즉 의로운 삶을 살게 되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 즉 구원이라고 한다. 의롭다함을 얻는 것만으로는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다. 

 

속지 말라! 말씀을 배우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의롭게 된 후에도 행위는 중요하거나 필요하지 않다고 하며, 적반하장격으로, 성경대로 믿는 자의 행위를 강조하는 참된 크리스챤들과 참된 교회를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그들은 예수님과 사도 바울 나아가서 성경도 ‘이단’이라고 할까? 백보 양보해서 그들의 말대로 구원의 시작은 믿음만으로 되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믿은 후에 사는 동안 의를 행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마태12:50; 디도3:14; 야고보2:14 등), 또 사는 동안 어떻게 행하였는가를 가지고 심판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후5:10; 벧전1:17; 계시20:12). 거짓에 더 이상 속지 말라. 성경으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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