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
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먼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만일 교회라는 모임의 사람들이 세상의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것이 없어도 여전히 교회일까? 그렇다면 그것을 왜 예수님의 신부로, 몸이라고 하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이요, 백성이요, 나아가서 자녀들이라고 할까? 이것만 생각해도 교회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상의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달라야 한다는 점으로부터 교회에 대한 이해가 시작 될 수 있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교회 사람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지,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도 된다는 것은 사탄의 거짓말이다. 지긋지긋하도록 검질기게 오랫동안 교회를 따라다니며 교회를 파괴하려하는 사탄의 거짓말이다. 성경은 교회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달라야 하는데, 어느 정도로 달라야 하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사람들이라고 할 만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0장28절은 에베소 교회를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피로 얻”었다고 하고 에베소서 1장7절과 히브리서 9장12절도 구속이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것을 강조한다. 즉,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사람들이다. 나중에 이 비유적인 표현이 무슨 뜻인가는 곧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어쨌든 이로써 우선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교회는 세상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구별되고 다른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세상사람들과 분명히 다르게 구별되는 삶을 살지 않는 사람들은 매주 교회에 나간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크리스챤들이 아니고, 그런 사람들은 교회가 아니다. 물론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만든 현실의 교회들에는 구원받은 사람들과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회는 그런 세상적 교회가 아니라 성경적인 교회임을 주의하시기 바란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그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죄와 죄사함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다 (디모게전서1:15). 그럼 누가 죄인인가? 모든 사람이다. 로마서 3장23절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죄란 옳은 것이 무엇인 줄을 알고서도 행하지 않는 것이므로 (야고보서4:17) 여기서 모든 사람이란 옳고 그름을 아는 사람을 말한다는 점이다. 즉, 아직 나이가 어려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어린이들이나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정신적 능력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는 것은 죄를 지을 정신적 능력(흔히 범죄 능력이라고 한다)이 있는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죄인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양심껏 산 사람도 있으니 죄를 짓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죄는 어느 것이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아무리 양심을 잘 지키고 살았다 하더라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있을 수 없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죄이다 (요한일서1:10).
구속의 은혜
하나님의 법에는 변함이 없고 열외가 없다. 그것은 죄인은 죽어야 한다는 법이다 (로마서6:23).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죄값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가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므로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가야만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사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시기를 원하신다 (디모데전서2:4).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요한일서4:8). 그 사랑과 자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 죄값으로부터 놓여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죄인들의 죄값을 대신 치를 희생양으로 내어 주신 것이다 (로마서3:25; 요한일서4:10). 그리고 그 희생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룩한 속죄의 기회를 받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 구속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구속의 은혜를 통하여 구원의 길에 들어선다. 그 구속의 은혜를 받아들여 구원에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죽음이 주는 은혜를 받아들인받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 복음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을 비유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사람들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피로 샀다는 것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면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구원받은 자들이 이전에 지은 죄에 대하여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먼저, 죄사함이다. 예수님의 구속이 필요한 이유는 죄값을 씻기 위해서다. 사람은 스스로 그 죄값을 씻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 그 구속의 은혜를 받은 효과가 바로 죄사함 즉 용서이다. 이전에 지은 죄를 용서받지 않고서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구원은 단지 예수를 믿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요한복음3:16)는 표현은 이 모든 과정이 믿음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일 뿐,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마태복음 7장 24-27절, 로마서 1장1-11절, 야고보서 2장14-26절 등 모든 성경이 이를 가르친다. 즉, 앞으로 자세히 보겠지만, 믿음을 갖는 이외에도 죄사함을 받는 과정은 물론 구원받은 후 죽기까지 의로운 삶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이유는 피로 산다는 것의 두번째 의미에서도 알 수 있다.
교회, 거듭난 사람들
예수님의 피로 샀다는 것의 다른 하나의 의미는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전의 죄값을 씻은 후 다시 죄를 짓는 삶으로 되돌아간다면, 죄사함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따라서, 죄사함을 받을 뿐아니라, 앞으로 죄를 짓는 삶을 택하지 않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아기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결국 영적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역시 비유적인 표현이다.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다시는 죄 즉 불의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로마서6:5-14).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의 또 다른 한가지 의미는 의 즉 죄를 멀리하는 삶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5:15-19). 의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의의 종이란 하나님의 뜻에 손종하는 사람을 말한다.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은 바로 의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마태복음7:21).
이렇듯 예수의 피로 샀다는 것은, 예수의 대속의 은혜를 통해 죄사함을 받고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 즉,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다시 태어 났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예수 그리스도의 이 구속의 은혜를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들, 즉 예수의 피로 사신 바 된 사람들이 바로 교회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 사람들과 본질 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죄값을 지고 살고 있고 죄의 노예로 살고 있는 반면, 참된 교인들은, 예수의 피가 죄값을 치러주어 용서를 받은 후 죄의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의의 노예가 되어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피로 산 참된 크리스챤이 되지 않은 한 세상적인 사람이 교회라는 곳에 들어간다 한들 교회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 세상적인 삶을 사는 세상 사람들이 주일에 교회라고 이름 붙인 장소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의 피로 사신 바 된 사람들만이 참된 교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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