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기다림의 시작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기다림이 아닐까? 주문한 물건이 배달되기를 기다리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히 주문을 했고 값을 지불했고 배달일이 있으니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것은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다. 하물며,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언제 올 지 전혀 모르고 기다리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않으랴. 기다리는 것이 인생에 중요한 것일 때는 기다림에 피가 마르기도 한다. 기다리는 것이 아이들의 대학 입시지원 결과라면?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준비 끝에 꿈에 그리던 회사의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린다면? 황혼의 나이가 되어 몸에 이상이 있어 참다 참다 조직 검사를 한 후 그 결과를 기다린다면? 피가 마르는 것은 몰라도, 적어도 입이 바짝바짝 탈 것이다.
미국에 온 후 지금까지 사는 중에 가장 큰 기다림은 신학을 마치고 종교비자를 신청한 후 기다린 승인 통지였다. 종교비자는 내 인생은 물론 내 가족의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것이었다. 이민자들에게 법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주권이지만 비자가 있어야 당장 미국에 머물 수 있기에 비자는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이 긴급하고 중요하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비자가 있어야만 합법적인 체류가 될 수 있고, 합법적인 체류 동안에만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도 비자는 중요하다. 그러나 나에게 종교비자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일을 할 수 있는 법적인 자격을 준다는 점이다. 학생비자를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더구나 학생비자로 미국에 머무르려면 대학 학부는 한학기에 12학점 이상, 대학원은 9학점 이상을 수강해야 한다. 유학생들이 일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노동시장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므로 엄격하게 지켜진다.
한인 커뮤니티가 있는 애틀란타로 이사 온 후로 알게 된 일이지만, 학생비자로 미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한다. 내가 미시시피 주립대학, 올미스를 다닐 때 했던 조교와 같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불법 노동이다. 우리 가족은 학생비자로 체류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불법 노동을 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우리가 미국에 체류하는 목적, 즉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상충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을 할 수 있는 비자를 받는 것은 더욱 간절했다.
6년 반만에 신학 교육을 마쳤다. 두 달 만에 어학과정을 졸업한 후였다. 2006년 10월 18일에 어학과정을 들을 테네시 주립대학 마틴 캠퍼스에 도착했다. 어두운 밤에 도착을 해서 기숙사를 배정받고, 다음 날인가 그 다음 날인가 배치고사를 봤다. 어학과정은 총 6단계가 있는데, 5단계까지가 공식 과정이고, 6단계는 선택이다. 두 달을 한 텀(Term)이라고 하고, 한 텀에 한 단계를 마칠 수 있었다. 배치고사는 신입생이 몇 단계로 들어갈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단계로부터 5단계까지 올라가서 마치면 졸업할 자격이 주어진다. 배치고사는 필기시험(Written Test)과 구두시험(Oral Test)로 구분되는데,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마쳤다. 외국인과 대화를 많이 해 보지 않아서 구두시험이 좀 부담되기는 했지만, 실제 해 보니 가벼운 대화였다. 배치시험의 결과에 따라서 나는 5단계에 바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달 속성으로 어학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이것이 많은 문제들의 시작이었던 것같다.
내 영어 실력은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는 IBT토플 95점을 받은 정도였다. 물론 말하기 듣기 테스트도 있지만, 테스트와 실제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강의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 논문, 주석서, 참고서들을 읽고 이해하는 데 미국 학생들에 비해 두 배 세배의 시간을 들여야 했다. 심지어 가장 중요한 영어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조차 때로는 어려웠다. 한글 성경을 참조해야만 온전히 그 구절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에서 직접 강의를 들으며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영어에도 더 좋을 것이라는 얄팍한 생각으로 대학원에 지원을 했는데 운좋게 입학허가를 받았다.
당시 내 영어실력으로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대학원은 전문가로 인정받는 과정이다. 석사학위에 대한 인식이 한국에서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한국도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지만, 미국은 석사학위 소지자는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된다. 학부를 졸업하고 현업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도 몇 년이 지나면 전문성을 인정해 주지만, 석사학위를 마친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석사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전문지식을 습득하기 때문이다. 책, 논문 등을 일주일에 수백 페이지씩 읽어야 하고, 일주일에 두어 개의 글을 써야 한다. 토론, 발표, 그리고 15-25 페이지 분량의 텀페이퍼(에세이 혹은 출판하지 않는 논문)까지 해내야 한다. 유학생은 최소 3과목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니 더 힘들다. 미국 학생들은 보통 학기 중에 2과목을 수강하고 방학 중에 1과목을 2주만에 끝내는 Short Course를 듣는다. 나도 졸업하는 마지막 학기에 한 과목을 Short Course로 들어야만 했는데,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 해도 겨우 따라갈까 말까 했다. 이런 대학원 과정을 영어가 온전하지 않은 내가 두 달만의 어학과정만을 마치고 시작한 것이다.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편두통이 자주 왔다. 처음엔, 그 전에도 심한 두통을 앓은 적이 있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점점 심해지고 잦아졌다. 영어로 인한 두통이었다. 한국말이라고는 가족들과 밖에 할 일이 없는 미국 테네시의 시골 동네에서 살며, 충분하지 않은 영어로 대학원을 다니는 상황이다 보니, 언어의 스트레스 때문에 심한 두통이 자주 왔던 것이다. 주말에라도 영어를 하지 않고 머리를 좀 쉴 수 있으면 나았으련만, 미국 학생들 기준으로 내주는 읽기 과제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하기 위해서도, 미국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도 영어로부터 피할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나보다 영어가 부족한 아내를 위해 바이블 클래스와 설교를 통역해 주어야 했으니 어찌 뇌가 쉴 틈이 있었으랴. 세월이 약이었을까? 한 학기 두 학기 지나면서 영어도 조금씩 나아졌고, 정비례하듯이 두통도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그 “영어 두통”이 미국에서의 공부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그렇게 6년 반만에 성경 및 목회학 등 두개의 석사학위를 마쳤다. 비자를 스판서해 주려고 기다리던 미국 교회에서 졸업하기 몇 달 전에 전문직 비자를 신청했다. 종교비자를 스판서할 법적 요건을 갖추기 쉽지 않다면서, 미국인 변호사가 권유하는 대로 따랐다. 그런데, 교회의 미니스터를 전문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거절 통지를 받으면서야 알게 되었다. 교회에 따라서는 “필”만 받아도 미니스터가 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가 급행료까지 포함해서 7천여 불을 지불했는데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비자가 불발되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야만 했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미국에 온 지 어언 7년, 우리 아이들을 보니, 큰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작은 아들은 중학교 1학년이었다. 아이들의 주된 언어는 이미 영어가 되어 있었다. 큰아들은 한국말을 제법 했지만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수준에 멈춰 있었다. 읽기도, 쓰기도, 어휘력도 딱 그 정도였다. 작은 아들은 겨우 한글로 말문을 튼 후에 미국에 와서 사실상 영어가 첫 생활 언어였다. 미국의 유치원 2년을 지나고 초등학교 1학년 쯤이 되어서야 영어로 소통을 하기 시작했으니, 그때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정말 난감한 아이였다. 언어도 언어지만 그 사이에 아이들이 공부한 모든 것이 한국의 교과과정이 아니니,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그 때에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더 이상 옵션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러나 저러나 첫 비자 신청은 좌절되고 결국, 어둡고 긴 기다림의 터널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때 맞춘 듯 인턴쉽을 할 교회가 나타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그 교회도 종교비자 스판서를 할 요건은 안 되었지만, 1년의 OPT 기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OPT가 끝난 후에도 계속 미국에서 일하고 살기 위해서는 스판서해 줄 수 있고 할 의사가 있는 교회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만 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자기소개서와 레쥬메를 엘에이, 샌디에고, 달라스, 시카고, 애틀란타 등 제법 큰 한인 커뮤니티가 있는 도시들에 있는 10 여 개의 미국 교회들에 무작정 보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스판서 교회가 제때에 나타나지 않을 것에 대비해 학생비자를 유지할 목적으로 진학을 하기 위해 다시 토플과 GRE 시험을 보아야 했다. 싫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의 삶을 접고 미국에 와서 어려운 영어로 머리가 아프게 성경공부를 했건만, 청빙해 줄 교회가 없어서 일을 할 수 없다니. 그러나, 아는 교회도 많지 않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미국에서 스판서를 할 수 있고 해 줄 의사가 있는 교회를, 그것도 한국인을 청빙할 미국 교회를 찾는 일은 눈을 가린 채 눈을 뜨고 피해다니는 친구들을 발자국 소리만 듣고 찾아다니는 술래잡기와 같았다.
하지만, 조바심내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묵묵히 기다리기로 했다. 일단 우리가 살던 타운에 있는 미시시피 주립 대학에서 제2외국어영어교육(TESL) 석사 학위 과정에 지원해 뒀다. 오로지 학생비자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터널이 얼마나 어둡고 긴 것인 지 전혀 모른 채, 그렇게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없이 못난 나를 믿고 진득하게 흔들림없이 학업에 충실해 주었던 큰 아들 한웅이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작은 아들 한빛이는 어려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의젓하게 가족들을 따라와 주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고마운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단 한 마디의 불평불만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부정적인 말이나 태도를 보이지 않은 아내다. 정말 칠흑같이 어둡고 기나긴 터널이었는데 말이다.
- 장민구 목사,
- 간증,
- 반추,
- 아틀란타 한미 그리스도의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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