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길은 다 헤아릴 지혜가 없다 (로마서11:33b).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의 인생에는, 당시에는 왜 그 길을 가야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데 지나서 뒤돌아 보면 하나님의 세심한 인도였음을 보고 놀라고 감사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이렇게 보면, 두 가지는 확실하다. 하나는, 당장 보기에는 아무리 힘든 길이라도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점이다. 올미스에 다닌 것은 나에게 이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간증이다.
옥스포드 미시시피에 있는 주립대학은 특이하게 별명이 있다. Old Mistress를 줄여서 Ole Miss라고 부르기 시작했단다 (동상은 올미스 캠퍼스에 있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 동상이다). 어떤 미국인들은 “남부의 하버드”라고 말하기도 한다. 공부를 잘하는 학교라는 뜻으로가 아니라, 남부의 백인 ‘귀족’가문들이 자녀들을 보내는 학교라는 뜻으로다. 부잣집 아이들이 많이 오다보니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파티 스쿨이다. 물론, 학문적으로도 약학이나 비즈니스 등은 미국에서 어느 정도 알아준단다. 그런 올미스가 있는 옥스포드에 우리 가족이 이사가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2009년에 12월에 첫 학위를 마치고 신학을 더 공부하기로 결정을 하고 다른 신학교에 전학신청을 했다. 그 학교에 다닐 것을 생각해서 옥스포드로 이사를 했다. 학교가 있는 곳은 멤피스 테네시였지만, 올미스에 한국인 유학생들이 제법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캠퍼스 미니스트리를 하기 위해서 그 학교까지 1시간 20분 걸리는 옥스포드를 택한 것이었다.
2013년 5월에 멤피에 있는 학교에서 신학석사 과정을 마치기 전에 H1B비자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이미 언급했던 것과 같이 졸업이후에 이니드 미시시피에서 1년의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기간 동안 인턴쉽을 했다. 인턴쉽을 하던 2014년 4월 3일에 종교비자 신청이 접수되었다. OPT기간은 한달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빨리 비자 승인이 난다고 하더라도 최소 6개월은 걸릴 것이니 학생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일단 올미스에 지원을 했다.
정말 더 이상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 신학도 아닌 다른 학문에는 더구나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올미스에는 현대어학(Modern Languages)과가 있는데 그 과에 영어제2외국어교육학(TESL; Teaching English as Second Language) 석사 과정이 있었다. 기간만 채우면 학위를 주는 실용성이 없는 학위라는 등 TESL에 대해 한국에서 부정적인 말들을 적잖이 들은 터라 더욱 내키지 않았지만 그나마 관심이 조금이라도 가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고 영어라도 더 배우자는 맘으로 결정했다.
다행히 입학허가를 받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학비는 장난이 아니었다. 1년에 2만불 남짓. 장학금은 없었다. 미국에 온 뒤로 항상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던 터라 외국인에게 장학금을 주는 공립대학은 거의 없다는 것을 그 때 알게 되었다. 장학금이 없이는 학비를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니 정말 난감했다. 그나마 걱정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수강취소가능 시기까지인 9월에는 비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초긍정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자가 나오기는 커녕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결국 대학원에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고 등록도 해야 하는 시간이 다 되어 갔다.
학과장이고 지도교수인 타마라 워홀 (Tamara Warhol) 박사에게 재정지원을 부탁하는 이메일을 써 보냈다. 한참 동안 별 소식이 없더니, 개강하기 한 일주일 전에 이메일이 왔다. 파트타임 조교 (Half Graduate Assistant)를 원하면 ESL과정에 한 자리가 있단다. 일주일에 20시간을 일하는 풀타임 조교와 달리 10시간만 일하면 된다. 나에게 적당한 시간이다. 더우기 좋은 것은 이 Half GA만 해도 수업료의 75%를 면제해 주고, 한달에 약 450불의 페이(stipend)를 받는 다는 점이다. 따라서 수업료 전액을 면제받는 것과 같은 재정적인 효과가 있다. 캠퍼스 미니스트리, 설교 등 교회 미니스트리도 겸해서 해야 하는 나에게는 어차피 풀타임은 불가능했다. 아니 파트타임만도 사실은 버겁다. 9학점 대학원 과목들을 들으면서 파트타임 일을 두개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어쨌든 학비는 그렇게 해결되었다.
문제는 생활비였다. 인턴쉽을 통해서 받던 1500불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역시 다른 방도는 없었다—기도와 간구 뿐. 그 때 스판서 교회인 체스트넛 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학교에 입학하게 된 사정을 말했다. 이분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얼마 후에 그 교회에서 우편물이 하나 왔다. 열어보고 너무나 감사했다. 1500불짜리 교회 첵이었다. 담임 목사인 마이크로부터 이메일도 왔다. 학비와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장학금으로 매월 그만큼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단다. 이런 말도 덧붙이면서: “우리도 작은 교회라서 더 많이 지원해 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에 대해 나는 말했다: “정확히 우리가 필요한 만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너희를 통해서 채워주셨다.”
그렇게 해서 올미스에서 TESL석사학위 과정 시작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아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더 준비시키시기 위해 계획하신 과정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유는 이렇다. 그 과정은 크게 3가지 분야가 종합된(multidisciplinary) 과정인데, 하나는 언어학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사회학이며, 다른 하나는 교육학이다. 이들은 신학대학원에서 내가 부족했거나 혹은 반드시 필요했지만 알지도 못했던 것들이었다. 간략히 말하자면, 언어학은 신학에서 맛만 봤던 언어문학적 해석방법론(literary criticism)을 채워줬고, 교육학은 신학과정에서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교육 방법론을(methodology) 채워줬다.
무엇보다 압권은 언어사회학(sociolinguistics)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서 문화와 언어의 역할에 대한 것을 다루는데, 내가 미국 신학교들에서 7년 반을 공부하면서 가지게 되었던 많은 해석상의 의문들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의문의 배경은 이랬다. 내가 성경에서 찾아내는 메세지와 서양신학들이 찾아낸 메세지들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내 방법론이 틀렸거나 혹은 나만의 생각에 빠져서 그런게 아닌가 해서 몇년 동안 너무나 힘들었다. 더우기 나의 생각을 미국 교수들이나 학생들과 나누기 힘들었다. 그들이 이해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고 내가 그들을 이해시킬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언어사회학이 정확히 그 원인을 알려 주었다. 한마디로, 언어와 사회 및 문화의 차이였다. 간단히만 말하자면, 성경은 동양의 사상에 바탕해서 동양의 언어로 쓰여진 것인데, 지난 2천년간 서양의 학자들에 의해 서양적 방법론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해석상의 문제들을 낳았는데 서양 사람들은 그런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문제들이 동양의 사고방식과 방법론을 배경으로 가지고 서양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나에게는 보였던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틀린게 아니었고 나아가서 이미 그에 대한 학문적 해결책이 존재하고 또 이미 어느 정도 발전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겪었던 정신적 어려움의 원인을 알게 된 것은 물론 더 깊은 성경해석의 학문적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고 믿지 않을 수 없는 근거다.
그런데 증거는 그 뿐만 아니다. 아틀란타에 와서 보여진 증거는 그 과정을 하기 조금이라도 싫어했던 마음을 가졌던 것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게 했다. 아틀란타에 계신 한국분들이 영어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고 있는지를 오자 마자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료 영어교실을 시작했는데 많은 한국인들과 인연을 맺게 해주었다. 그중 어떤 분들은 우리 가족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어떤 분들은 우리와 성경공부를 하기도 했고, 그 중에 많지는 않지만 우리와 믿음을 같이 하게 된 분들도 있다. ESL클래스가 아니었으면 맺어지지 못했을 인연들이었다. 그러니 그 학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한인 미니스트리를 위해서 받게 하신 학위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쓸 데 없이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일은 없다. 다만 어리석은 사람이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거나, 혹은 순종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그 과정의 의미를 알 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그 자녀들의 인도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와 세심함과 자비와 사랑은 헤아릴 수 없이 깊고 크다. 그것은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그 과정을 이겨낸 하나님의 선한 자녀들에게만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그 입가에 감사의 미소를 짓게 한다. 올미스에서의 나의 TESL석사과정이 그런 간증이 아닐 수 없다. (계속)
-
15호--벼랑의 끝에서 하나님을 믿다
NOID, notice of intent of denial (거절의사통지)! 종교비자를 신청한 후 거의 스물세 달을 기다린 후에 받은 것이다. 한웅이는 주니어였고, 한빛이는 중3이었다. 아이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눈앞이 컴컴했다. 마음 속에 밀려오는 좌절감은 마치 스폰지로 된 ...Date2018.03.20 Reply2 Views460 -
14호--Grill Party
미국에 오기 몇 년 전, 처사촌 중에 한국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 아이들에게 고기라도 많이 먹여 보겠다는 생각으로 중국으로 이민을 갔던 사람이 있다. 결국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거기 살면서 우선 잘 먹이기라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는데, 그 ...Date2018.03.13 Reply0 Views399 -
13호--미숙아였던 한빛이
부모가 어려움을 겪을 때 아이들도 직간접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한 환경이 아이들의 성장에 주는 영향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 영향이란 마치 새하얀 광목 천에 먹물을 엎지른 듯이 그 영혼에 그대로 스며드는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음이 여리고 순수...Date2018.03.05 Reply0 Views425 -
12호--Don't be upset
정이라는 우리 말에 해당하는 개념의 영어 단어가 없듯이 영어의 upset에 해당하는 우리 말 단어도 없는 것같다. 화난 상태, 또는 예민한 상태 등을 가지고 비슷하게 설명을 할 수 있어도 ‘아하’ 하게 하는 그런 딱 맞는 단어를 아직 생각해 내지...Date2018.02.26 Reply0 Views400 -
11호--아내, 더 약한 그릇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사모’(목회자의 아내)는 직분은 아니지만 그 어떤 다른 직분보다도 더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고. 맞는 말인 것 같다. 목회자와의 관계 때문에 목회자의 아내는 목회자가 감당하는 것을 고스란히 같이 감...Date2018.02.18 Reply2 Views507 -
10호--하나님의 뜻 vs 내 바램
드라마는 인생의 선생이다.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몰입한 시청자들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야기의 전체를 보는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드라마 속의 캐릭터들은 각각이 처한 상황에 맞게 살기 때문이다. 어려서 잃어버린 자식을 20여 년 동안 애타게...Date2018.02.10 Reply0 Views410 -
9호--첫 열매 한웅이
큰 아들 한웅이는 우리 부부의 인생의 증거이자 첫 열매다. 우리 부부의 21년의 삶 중에 20년을 함께 한 첫 아들. 우리의 기나긴 기다림의 구비구비에는 언제나 한웅이가 함께 있었다. 기쁨과 아픔을 같이 했기에 한웅이라는 이름만 생각해도 가슴이 저릿하다...Date2018.02.04 Reply2 Views431 -
8호--올미스
하나님의 길은 다 헤아릴 지혜가 없다 (로마서11:33b).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의 인생에는, 당시에는 왜 그 길을 가야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데 지나서 뒤돌아 보면 하나님의 세심한 인도였음을 보고 놀라고 감사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이렇게 보면, ...Date2018.01.29 Reply0 Views437 -
7호--고마운 사람들
사람은 혼자 못산다. 관계를 통해서 산다. 물질적으로도 그렇지만,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진 영적인 관계가 교회이고 (요한일서1:3), 그 사람들이 세상에서 나누어야 하는 것이 형제, 이웃의 사랑이다 (요한복음13:34). 그 영적 ...Date2018.01.20 Reply0 Views36298 -
6호--첫만남: We will take care of you anyway!
스판서 교회와 처음 만남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 시작인 그 만남을 사탄이 방해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먼저 변호사를 선임해야 했다. 미국 교회는 한 번도 외국인을 고용해 보지 않았기에 비자가 필요하다는 것 이상 더 자세한 것을...Date2018.01.14 Reply0 Views384 -
5호--Calvary Hill church of Christ
본래는 지금의 교회가 아니라 갈보리 힐 교회에서 일을 할 줄 알았었다. 그 교회에서 신청한 H비자가 거절되지 않았거나, 그 교회가 501C3인증을 IRS로부터 조금만 더 일찍 발급받았더라면 그 교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게다. 지금의 교회가 제출할 종...Date2018.01.07 Reply0 Views250 -
4호 --예비하시는 하나님
이 쯤이, 그 교회가 어떻게 나를 스판서하게 되었는가를 얘기할 순서인 것 같다. 이 일은 생각할 수록 은혜롭다. 왜냐하면 이 일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예비의 역사를 볼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그의 진리의 교회를 통해서 이루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Date2018.01.01 Reply0 Views343 -
3호 --가만히 있으라
미국에 온 뒤 빈번히 나를 괴롭히는 상상이 있었다. 부모를 잃은 한웅이와 한빛이가 보인다. 한빛이는 아직 유치원생 정도고 한웅이는 초등학교 2-3학년 쯤이다. 한웅이가 한빛이를 데리고 다니며 돌본다. 한웅이는 어른스럽게 상황을 이겨나가고 얌전한 한빛...Date2018.01.01 Reply0 Views355 -
2호 --우연, 필연의 한 조각
하나님의 나라에 우연은 없다. 사람의 눈에는 우연처럼 보이는 일들이 많지만 먼 훗날 뒤를 돌아보면 그 우연처럼 보이던 일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어 냈음을 보게 된다. 화들짝 놀란다. 그 중 단 한 가지도 우연이 아니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Date2018.01.01 Reply0 Views330 -
1호 --기다림의 시작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기다림이 아닐까? 주문한 물건이 배달되기를 기다리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히 주문을 했고 값을 지불했고 배달일이 있으니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것은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다. 하물며, 어...Date2018.01.01 Reply0 Views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