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판서 교회와 처음 만남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 시작인 그 만남을 사탄이 방해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먼저 변호사를 선임해야 했다. 미국 교회는 한 번도 외국인을 고용해 보지 않았기에 비자가 필요하다는 것 이상 더 자세한 것을 몰랐다. 변호사도 내게 선임하라고 일임했다, 모든 비용은 교회에서 제공했지만. 멤피스의 처치 어브 크라이스트 멤버인 에릭에게 연락했다. 이전에 H1b 비자가 거절된 후에 어필을 해야 하나를 알아보다가 알게 된 형제다. 처음 그의 사무실에 갔을 때 대학 캠퍼스 선교사셨던 글렌을 만났는데 그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에릭은 얼마가 드는 지도 말해주지 않고 내가 원하면 무료로 담당해 주겠다고 선뜻 후원의 뜻을 비쳤다. 다만 자기는 종교비자는 다루어 보지 않아서 좀 알아보면서 해야 한다는 것과 한달에 천 건 정도의 일을 하다보니 자기가 바쁜 것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스판서 교회에 부담도 덜어줄 겸 에릭에게 부탁을 했다.
서류를 준비하던 어느 날 교회에서 이메일이 왔다. 어떻게 전도를 할 건지 계획을 말해달하는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의 그런 질문이 불쾌하게 받아들여졌다. 일도 시작하기 전인데 숫자부터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서 어떻게 전도를 해야 하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라 오해를 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 교회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성과주의에 빠져있는 교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해가 더 커져갔다. 급기야 내 오해가 사실로 느끼면서 이메일에 답장을 했다: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기회가 되는 대로 한국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길 일이라는 것뿐이다. 나는 그 이상을 개런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 이상을 원하는 게 있다면 이쯤에서 스폰서 얘기는 없었던 일로 하자.”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는 비자가 안 되는 한이 있어도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서 내 대답은 확고했다.
이메일을 보내고 몇 일 동안 연락이 없었다. ‘결국 안 되는 것이었구나’ 하고 실망하고 서류 준비도 멈췄다. 그러다 마이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직 만나보지 않았던 때라 전화받기도 불편했다. 어쨌든 내 뜻을 분명히 전하기는 해야했기에 전화를 받았다. 인사말 뒤에 마이크의 농담조의 첫마디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What’s wrong with you?” 나는 다시 내 생각을 설명했다. 조용한 목소리로 마이크는 조근조근 자신들의 선교에 대한 생각을 설명했다.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런 이메일을 보냈냐고 물었다. 마이크는 단지 내가 한인 선교에 대해 어떤 계획이나 아이디어들을 갖고 있는지를 물은 것이었지 어떻게 숫자를 늘릴 건지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몹시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스키죠프레니아(Schizophrenia)와 같은 현상이었던 것이다—수입없이 8년을 살다 보니 생긴 예민함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그렇게 해석을 한 것이지 상대방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오해를 사과하는 내게 마이크는 계속 서류를 준비하라고 말했다. 내 그런 잘못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회를 주는 것에 감사했다. 전화를 끊고 이메일을 다시 읽어보니 마이크의 말이 맞았다. 그제서야 내 자신의 오해에 한숨이 나왔다. 하마터면 그렇게 어렵게 얻은 기회를 얼토당토 않은 내 예민함 때문에 사탄에게 속아 놓칠 뻔했던 것이다.
마이크로부터 교회로 한 번 올 수 있냐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디서 묵을 거냐고 물었다. 괜찮다면 마이크의 집에서 머물러도 된다고 했다. 우리가 아쉽고 황송한 입장에서 잠자리까지 신세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라빌 근처의 싼 호텔을 그것도 호텔스닷컴에 쌓인 리워드 포인트로 예약했다. 7년 반의 유학생 생활로 몸에 베어서 하루 한두끼 정도는 호텔에서 컵라면을 끓여먹는 등 식비도 아낄 것이었다. 몇 일 후에 마이크가 다시 연락을 해서 오면 저녁 예배에 설교를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 교회와의 첫만남의 날이 되었다.
주일 오전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건물이 상당히 컸다. 노아의 방주가 산 중턱에 걸쳐 있는 듯한 형상이었다. 마이크는 미국 맥도날드 농장의 농부같이 푸근한 인상을 가진 덩치 큰 사람이었다. 반면 와이프 즈닌(Janine)은 인자하고 편안한 미소를 가진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즈닌이 준비한 점심을 그들 집에 가서 먹고 장로들과 식탁에 둘러 앉아 미팅을 했다. 월급을 정할 때였다. 금액을 제시하며 그 정도면 생활하는 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당시 우리 가족의 한달 실생활비와 거의 같은 금액이었다. 큰 두 아들들이 코끼리 같이 먹다 보니 식비가 만만치 않았었다. 렌트비와 식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니 렌트비만 당시 우리가 내던 1200불 정도의 집을 구할 수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재무담당자인 조지와 마이크가 갸우뚱했다. 그 가격의 렌트를 여기서 구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 때 짐 장로가 나섰다. 그는 장로 중 연장자이기도 했지만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키는 185정도 되는데 몸집도 어마어마하다. 목소리는 우렁우렁한 천둥소리 같다. 마이크와 조지의 의견을 듣고 있더니 말했다: “That’s okay. We will take care of you anyway.” 마이크와 조지를 번갈아 보면서 “Oaky?” 하자 둘 다 “Okay” 하며 넘어갔다. 그렇게 고용계약서에 사인이 되었다. 짐이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비자를 승인받고 이곳으로 이사를 올 때까지 분명히 알 수 없었다. 방 세개짜리 1200불짜리 렌트를 구할 수 없었다. 그 때 교회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타운 홈을 갑자기 산 것이다. 그리고, 전기세 등 모든 것을 포함해서 딱 그 만큼을 지불하고 사택으로 살게 해 주었던 것이다.
저녁 예배에서 설교를 하고 미시시피로 출발하기 전이었다. 조지가 차종이 뭐냐고 물었다. '뭐 그런 걸 묻지?' 하고 생각했다. 잠시 후 자기 사무실에 갔다와서 봉투를 주었다. 설교 사례와 여행경비라고 했다. 빠듯한 학생 살림인지라 얼마라도 고마운 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꺼내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한다. “이거 뭐야?” 750불 짜리 수표였다. 나중에 잘 못 준 것 아니냐고 물었는데, 여관비, 밥값, 기름값은 물론 자동차 감가상각비까지 포함한 금액이란다. '아하, 그래서 차종을 물어본 것이었구나" 하며 그분들의 세심함과 정직함에 놀랐다.
교회 분들의 따뜻함과 친절함 그리고 정직함까지 모든 것이 은혜롭고 감동스러웠다. 이 감동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까도까도 끝이 없는 양파처럼 그분들을 알면 알 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 교회를 성과주의에 물든 속물교회로 오해해서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박찰 뻔했으니 나의 경솔함과 사탄의 교묘함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한편 안도와 한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의 눈물이 난다.
금주의 설교 보기/듣기: 참된 믿음, 고난을 무릅쓰는 믿음 (야고보서 5장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