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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2 20:04

20호--첫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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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jpg

사업은 쉽지 않았다. 특히 제조업은 더 그랬다. 이전에 했던 경영컨설팅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자금, 인력관리, 생산관리, 그리고 거래처 관리—이 모두를 문제없이 해 내야 한다. 제조업을 직접 해 본 적도, 하는 것을 가까이 본 적도 없었기에 모든 것들과 좌충우돌 하는 가운데 많은 수업료를 지불하며 하나하나 그야말로 피눈물을 삼키며 배워야 했다. 

 

가장 먼저 닥쳐온 어려움은 그 바닥 사람들의 생리에 대한 무지때문이었다. 속된 표현으로 공돌이 공순이들이다. 그들에게는 곤조라는 게 있었다. 고난도의 기술도 전문지식도 특별한 것도 아닌데 ‘짬밥’ 즉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이 그들의 전부다. 그것을 쉽게 내놓지도 않거니와 다 공유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마지막 보루는 항상 숨겨 놓고 있다. 그들에게 급여를 주고 인간적인 대접을 해 주면 통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지만, 거의 1년 동안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다. 자문료, 이적료, 인센티브, 위로금, 회식대, 특별상여금 등등의 명목으로, 목을 쥐지는 않았지만 쥐고 있는 것처럼, 은근한 협박과 거짓말들로 순진한 젊은 사장을 우려먹었다. 심지어 20대 초반의 경리직원까지도 그들과 한 편이 되어 골탕을 먹였다. 하지만 왠일인지 나는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그냥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대담하게 그냥 소신껏 밀고 나갔다. 그런 내가 만만치 않았는지 처음 같이 시작한 사람들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다 떠났다.

 

고등학교 1년 위인데 재수해서 대학교 같은 학번이었던 선배가 내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오천만원을 투자했었다. 은행에서 급여를 기준으로 신용대출을 받은 3천7백만원을 합해서 시작했다. 그러나 투자는 훨씬 상회했다. 코팅 공정을 담당하는 컴퓨터화된 로봇이 가장 중요한 설비인데 한 대당 약 3천5백만원 정도였다. 최소한 두는 있어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 가지고 있던 카드들까지 다 동원해서 일단 기계와 설비를 했다. 공장의 온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에어컨 히터 시설을 해야 했고, 공장의 청정도가 불량률에 영향을 크게 미치기 때문에 덕트시설도 해야 했다. 화학페인트를 사용하는 공정이 있으므로 환경 기준에 따라 집진시설도 필수였고, 또 로보트가 전기와 압축공기로 움직이기 때문에 공업용 전기 시설은 물론, 초대형 공기압축기를, 24시간 365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두대나 설치해야 했다. 한가지에 1-2천만원씩 하는 것들이다 보니 돈이 부족했다. 결국 마산 망월동에 월 8십만원짜리 보증금 없는 월세아파트를 얻고 가족이 살던 아파트를 팔아 8천만원을 더 투자했다. 

 

한참 그렇게 설비를 하고 공장을 셋업해 나가고 있던 2003년 6월 경에 정말 비가 많이 왔었다. 그때 큰 위기가 왔다. 투자를 했던 선배가 마음이 바뀌어 투자금을 회수하려 했던 것이다. 그는 시작하자 마자 매월 2백만원을 배당받을 수 있다고 기대를 했단다. 그런데 왠걸 그 선배의 투자금 5000만원은 전체 투자금액 3억여원의 6분의1밖에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거기에 월 200만월을 첫달부터 배당해 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한달에 200만원씩이라면 이자로 치면 년 50% 정도 되는 사채보다 비싼 고리였다. 공부만 해서 세상물정을 모르던 그 선배는 … 막상 와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월 2백은 커녕 2십만원도 못받게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공장에 와서 보고 간 날부터 하루에도 열두번씩 사기꾼이니 도둑놈이니 하며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졸라댔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어느날 마산경기장 주차장에 덩그러니 차를 세우고 차안에서 사정했다, 8월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아무런 대책도 없었지만 나는 일단 두어달이라도 시간을 벌어 두어야만 했다. 깡패 친구를 보내 사업장을 야구방망이로 다 부셔버린다는 그 사람을 일단은 멈추게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 선배는 그런 식으로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은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다 날렸단다.

 

제조업은 정말 어려웠다. 지긋지긋하게 어려웠다. 그 스트레스로 그 좋아하는 밥맛을 다 잃었다. 정말 밥을 먹고 싶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당시에 삼성핸드폰을 사용했는데, 그 삼성폰의 디폴트 벨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릴 때마다 가슴이 나도 모르게 철렁 하고 내려앉으며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공장에서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는 전화, 관리자 누가 출근을 안해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전화, 그 선배의 지독한 독촉 전화, 그리고 1차벤더 생산팀, 관리팀 등에서 협력업체 사장들 회의가 있네 뭐네 하는 갑질하는 전화까지 … 정말 전화벨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이제 두돌배기 한빛이와 여섯살짜리 한웅이를 아무 연고도 없는 마산에 내려와 혼자서 묵묵히 키우느라 지쳐있을 집사람에게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었으랴. 괜히 걱정만 주었으리라. 그래서 고독했다. 그 무거운 짐을 누구 하나 대화할 사람도 없이 혼자서 지고 가다보니 정말 고독했다. 또 친구들이 모두 서울에 있는데, 마산과 창원에 있다보니 만날 친구도 찾아올 친구도 없었다. 이래서 남자들은 여자가 있는 술집에 가게 되겠구나 했다. 아무런 부담없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 때문에. 

 

그렇게 어려울 때, 나에게 신선한 공기를 쏘이게 해 주는 창문이 하나 있었다. 기도였다. 기도가 뭔지도 몰랐지만 내가 한 것은 기도였다. 매일 아침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골목길을 내려갈 때 항상 같은 기도를 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도와주세요. … 제발 도와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 … 도와주세요.”  수십번씩 “도와주세요”를 반복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믿음도 없었기에 조건부로, “만일 계신다면” 하면서. 그것은 아마 생애 처음 들은 설교 덕분이었던 것같다. 나에게 기도를 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예수님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자 하면 가는 것이지 … 폭풍이나 광풍이 일어난다고, 배가 뒤집힌다고 못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믿”으라고 했던 그 설교가 아무것도 모르는 믿음도 없는 나를 기도하게 했다. 내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들어줄 만한 것인가는 생각할 능력도 겨를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다—구하는 것이 세상적인 것이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건, 하나님은 그것이 악한 것이 아닌 한, 기도하는 자에게 힘을 주신다. 그것을 꼭 이루어준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을 이루어주시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해서는 안되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지는 않게 하신다. 즉, 가족의 안전을 저버리고 사채를 쓴다던지, 어려움을 못이겨 결국 자살을 택한다던지, 심지어 고독함을 이기기 위해서라고 핑계를 대며 아내 아닌 다른 여자를 탐한다든지 등등의 영혼까지 망하는 길로는 가도록 놔두지 않는다. 사업이야 내가 좋아서 시작했으니 망하든 흥하든 내가 한 선택에 대해 내가 책임을 져야하지만 영혼에 대해서는 내가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업으로 세상적인 성공을 이루려는 내 육신의 욕망은 내가 알아서 하도록 일단 놔두시지만, 내 영혼은 지켜주시는 것이다. 그 무식하고 무지하고 단순한 기도와 믿음을 통해서. 

 

그렇게 내 기도의 삶이 시작되었다. 기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는 심정으로 … 막무가내로. 그리고 그 기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도의 제목도 달라지고, 기도의 방법도 달라지고, 기도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도 달라졌다. 그런데 한가지 달라지지 않고 그 때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여전히 계속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다—“하나님 도와주세요.” 그 때는 살아계신 줄 몰랐기에 “만일 계신다면”이라는 조건부였지만, 지금은 나름 체험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심을 믿고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리고 보면, 기도란 피조물이 자신은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신의 마음과 태도를 고백하는 것이다. 즉, 기도는 믿음의 또 다른 표현이다.

 

금주의 설교듣기: 위선의 악 (마태복음 6: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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