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호--풍이 오다: 하나님의 치심

by 장민구 posted Apr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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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사 (1).jpg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삼성에서 지그를 다 빼가고 있습니다.”
 

옥상 컨테이너 박스 사장실 안을 음산한 핸드폰 벨소리가 가득 채웠다. 받고 싶지 않았지만 얼른 받자마자 공장장인 김과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한 말이었다. 지그는 작업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금형인데 삼성의 소유다. 언제든지 삼성은 맘대로 그것을 가져갈 수도 있고 다른 업체로 옮길 수도 있다. 그것을 뺏긴다는 것은 결국 일거리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삼성 협력업체로서 삼성에 잘못을 했거나 혹은 밉보였다는 의미이고, 결국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망한다.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다. 


불이나케 뛰어내려 갔을 때 삼성 작업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양손에 지그를 들고 나가고 있었다.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일단 당황한 생산직 직원들을 안심시키고 퇴근 시켰다. 그리고 관리직 직원들을 남겨 현장을 정리하게 하고 그동안 1차 협력사에 무슨 일인지 알아 보았다. 1차 협력사의 생산관리 팀장의 설명을 들었을 때 너무나 기가막힘과 동시에 발등을 찍고 싶었다. 억장이 무너지고 하늘이 무너지고 모든 기력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발단은 생존을 위한 내 ‘욕심’때문이었다. 처음에 말썽을 부리던 직원들이 나가고 새롭게 시작해서 생산은 안정이 되었다. 납품트럭 운전기사로 들어와 일하고 있던 나보다 한살 아래이던 김상우씨의 도움이 컸다. 


어느 날 그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사표를 냈다. 사람이 괜찮아서 지켜보고 있던 중이어서 저녁에 만나서 술한잔 하자고 했다. 왜 그만두는지를 듣고 싶었다. 아까운 사람이라 붙잡고도 싶어서였기도 했지만, 직원이 왜 그만두는지를 들어보면 경영상의 문제점을 알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마산 어느 깊은 골목 안에 있는 이름모를 통술집에서 둘이 앉아 우리 공장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그때까지 생각하고 파악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짜 공장의 모습을 얘기해 주었다. 정말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당시에 공장장이 생산기술자들을 장악하고 그들을 이용해 사장인 나를 쥐고 흔들고 있었다. 잦은 기술팀 회식비를 대주는 것에서부터 심지어 2차 3차 노래방비까지 대주었었다. 그래야 그들이 일을 더 잘 한다는 그 공장장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생산부 소속이었던 김상우씨는 “사장님의 호의를 그렇게 악용하는 사람들하고는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에게 그럼 내가 하는 대로 따라 주겠느냐고 말했다. 나를 믿고 그러마고 했고 다시 출근하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다 직원들은 놀라운 인사게시를 보게 되었다. 남품기사였던 김상우씨가 과장으로 전격 승진하면서 공장장으로 보직 발령이 난 것이다. 그리고 이전의 공장장은 생산부 기술직원으로 일하게 하고 공장장 자리에서는 물러나게 했다. 이 게시물을 본 그는 사무실로 무례하게 달려왔다. 그러나 그의 요구를 들어줄 내가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근무지를 무단 이탈했고, 그의 습성대로 술을 마셨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그는 생산기술자들을 전화로 불러냈다. 얼떨결에 일종의 불법 파업을 하게 한 셈이었다.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알면서도 그대로 놔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생산기술직원들을 근무지 무단이탈을 이유로 모두 해고통지했다. 이미 분위기를 파악한 그들은 잘못했다며 전공장장이 나오라고 해서 나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일종의 각서를 받고 해고통지를 취소해 주었다. 그러나 전공장장은 사정이 달랐다. 그에게는 말했다. 업무방해죄로 경찰서로 가든지 아니면 자진해서 그만 두든지 하라고 했다. “두고보자”며 이빨을 드러내며 짐을 싸고 나갔다. 그의 성격을 이용해 짠 내 작전이 먹혀 들어간 거였다. 


김상우 과장은 충성스럽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사업할 때를 회고할 때마다, 함께 고락을 같이 한 직원들이 다 생각나지만, 특히 그에 대한 고마움이 마음에 솟아 오르고 그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스며든다. 그는 사실은 경북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경찰직 특채로 파출소 소장까지 했었던 엘리트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는 그런 편안한 삶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학벌과 경력을 감추고 생산직으로 사는 것이 더 좋아서 그렇게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내가 알아본 것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상황에서 그가 나를 위해서 큰 역할을 해 주었다. 그가 공장장이 되면서부터 회사는 급속도로 안정되었다. 생산기술은 경쟁업체에 비교할 수없을만큼 향상되었고, 생산기술자들도 그의 관리를 잘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사장인 나를 잘 보좌해 주었다. 내가 현장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도록 해 준 것이다.


사업의 수익성도 개선되었다. 그러나, 불안정하고 많지 않은 오더를 받으면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생산의 혁신이 필요했다. 인센티브를 걸고 생산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나도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을 했다. 인건비와 재료비를 절감해야만 했고 불량률을 줄여야 했다. 인건비가 매출의 약 35%, 재료비가 30%, 그리고 일반 관리비가 또 30% 정도 들고 있었으니 세금을 제하고 나면 거의 수익이 없었다. 거기다가, 불량으로 반품된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손해를 보는 달도 있었다. 불량은 치명적이었다. 예를 들면, 제품 하나당 가공비는 200원 정도인데 불량이 나면 본래의 제품가격인 1000원을 변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생산과정을 모두 데이타화하는 것이었다. 생산기술자는 재료를 얼만큼 써서 몇개의 제품을 생산하는가를 기록하게 하고, 품질검사를 담당하는 공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몇개의 제품을 검사하는지와 자신이 검사한 박스에서 몇개의 불량이 반품되었는가를 기록하게 했다. 물론 그 손해를 직원들에게 물리기 위한 것이 아님을 충분히 설명했다. 반대로, 평균 이상으로 좋은 성과를 낸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약속했다. 그렇게 시작한 첫달부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30%에 이르던 재료비가 19%로 줄었다. 가장 중요한 불량률은 거의 0이 되었다. 그뿐 아니다. 인센티브가 약속되어 있으니 일을 잘 하는 분들은 많은 급여를 가져가게 되고, 자연스럽게 일이 더딘 분들은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났다. 두어 달 후에는 인건비가 거의 이전의 거의 2/3 수준으로 떨어졌다. 회사가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거위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오더였다. 


우리 공장이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자 삼성의 경쟁사인 LG핸드폰 협력업체에서 자기들 일도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부족한 오더량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양쪽을 합하면 오더가 더 안정되고 생산관리도 더 쉽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 일을 시작했다. LG쪽을 위한 공장을 하나 더 차린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오랜만에 골프 연습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경쟁사 사장님 한분이 오셨다. 연세도 많으시고 인격도 좋은 분이라고 알려져서 평소에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분이었다. 커피를 한잔 하면서 공장 돌아가는 얘기를 했다. 신생기업인 우리 회사를 걱정해 주고 여러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그리고 최근에 LG일을 하게 된 것도 어떻게 알고 축하를 해주었다. 사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축하할 일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나는 어쨌든 고맙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삼성에서 직원들을 보내서 지그를 빼낸 것이 바로 그날이었다. 그 김사장이 1차 협력사 생산관리팀장에게 우리가 삼성의 경쟁사인 LG일을 시작했다는 것을 ‘밀고’했고 그는 당연히 삼성에 통보를 한 것이었다. 김사장이 확인하려고 떠본 말에 넘어가서 한 말에 “고맙다”고 함으로써 확언을 해 준 것이다. 삼성에 경쟁사의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한 것도 아니고, 또 1차 협력사인 S사도 삼성과 노키아 일을 동시에 하고 있으며, S사의 삼성쪽 협력업체들이 같은 공장에서 노키아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기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내 생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놀라고 일자리를 잃을까 불안해 하는 관리직원들을 안심시키느라 회식을 했다. 노래주점에서였는데, 나는 양주 한잔을 마시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너무 피곤해서 금새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려 하는데 몸이 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전날 양주를 몇병 쯤 먹은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오른쪽 머리가 아프고, 오른 눈이 침침하고, 귀가 윙윙거리며 잘 들리지 않고, 오른쪽 어깨는 물컵도 들 수 없을 만큼 아프고, 다리는 이유없이 절룩절룩했다. 


육체적으로 보면, 내 욕심과 스트레스 때문에 온 풍이었다. 그런데 영적으로 본다면 믿음, 즉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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