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호--순종과 기도의 응답

by 장민구 posted May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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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순종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은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는 커녕, 그런 말이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었다. 어떤 존재에 대해서 순종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에 동의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처음 깨닫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내가 순종을 시작했을 때부터 많은 신기한 일들이 벌어졌다. 

 

한웅이가 7살 쯤 되었을 땐데, 비행기에 대해서 배웠는지, 비행기가 타보고 싶다고 했다. 사업이 망하게 되면 더 이상 해 줄 수 없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직 회사가 돌아가고 있을 때에 한 번 해 주기로 했다. 급하게 금요일에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오는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그런 여행이 우리 가족에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신혼여행 때도 자 보지 못했던 특급호텔 오션뷰 룸을 예약했다. 사업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서 나는 아주 신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아내와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그리고 나서 목사님에게 여행 계획을 알렸다. 대형 교회의 지성전이었지만 아직은 개척 상태여서 성도가 많지 않았다. 더구나 아내는 그 지성전의 개척 멤버 2가정 중에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덕유산에서 성령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후로 벌써 서너달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주일 예배에 나가고 있었다. 서너 가족이 예배를 드리는 상황에서 우리 가족이 빠지면 크게 표가 날 것같아서 지성전을 담당하는 목사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김영언 목사님은 나와 동갑이었다. 목회의 경험이 적지 않은 분이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같다. 그분은 나에게 많은 애정을 보였다. 나는 그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목회자라고 보통 사람과 뭔가 다른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목회자도 하나의 직업이다. 다만 목적이 다를 뿐이다. 즉 목회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인간적으로 친구와 같이 대했다. 목회자라고 해서 더 섬기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편히 전화를 걸어서 가족 여행을 가게 되었다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 목사님은 좋은 여행이 되기를 기도하겠다고 하면서, “그런데 …”라고 말끝을 흐렸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김 목사님이 말했다. “장민구 성도님 혹시 부활절이 뭔지 아세요?” 들은 적이 있었던 나는 대뜸 물었다. “부활절이 뭐예요?” 김 목사님은 간단히 설명을 했다. “아 아 그렇군요.” 김 목사님이 말했다. “이번 주일이 부활절 예배입니다. 매우 중요한 예배이기도 하지만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않으시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 성도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하지만 순종하시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전화를 끊고 부활절이 무엇인지 인터넷을 찾아 봤다. 더군다나 부활절 전에는 고난 주간이라고 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평소보다 좀 더 경건하게 주님의 죽음을 생각하며 지내는 기간이라고 했다. 그런 때에 여행을 간다는 것이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빛이는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아내와 한웅이는 어떤 이유로든 여행을 취소하면 여간 서운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순종이 중요하다고 하니 … 결국 나는 절충안을 생각해 냈다. 토요일 오후 늦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가족들도 실망시키지 않고 주일 예배 특히 부활절 예배도 참석하고  … 절묘한 안이었다. 돌아오는 부산행 비행기표를 바꾸어 여행을 1박2일로 줄였다.  

 

렌터카를 빌려서 호텔에 도착하니 아내와 아이들이 더 신이 났다. 중문단지에 하이야트 호텔은 모양부터 멋졌다. 타워 위쪽 층으로 바닷가 쪽의 방인지라 발코니 넘어가 바다인 것처럼 보였다. 아직은 추워서 수영장 물이 다 빠져 있었다. 그래서 호텔에서는 별로 놀 일이 없었고, 밖으로 나가 흑돼지 삼겹살도 먹고, 조랑말도 탔다. 멋진 렌트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이곳 저곳을 다니며 한웅이 한빛이 관광도 시켜주고, 사진도 많이 찍고, 내가 좋아하는 회 등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다. 

 

나는 신이 날 수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현실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동안 끊임없이 기도했다. 기도도 잘할 줄 몰랐기에 단순했다—“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세요. … 제가 죽게 생겼습니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 제 아내와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를 좀 도와주세요.” 수천 수만 번을 되뇌었을 것이다. 한 순간도 머릿속에서 그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밤이 되었다. 낮에 신나게 논 우리 가족은 뜨거운 물로 모두 목욕을 한 후 일찌감치 혼곤히 잠이 들었다.

 

문득 눈을 떴다. 아내와 아이들이 옆에 자고 있었지만 밖은 희뿌염했다. 시간을 보니 6시 였다. ‘아 참 내가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자고 있지’ … 문득 깨닫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바다 쪽을 보았다. ‘엇?’ 나는 깜작 놀랐다. 내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게 뭐지?’ 수평선 위에 하얀 기둥같은 것이 우뚝 서있었다—바다에서부터 하늘까지. 너무도 선명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을 한 것처럼 선명했다. ‘제트기 구름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달랐다. 제트기 구름은 그렇게 수직으로 생길 수가 없었다. 그것도 바다 바로 위에서부터 하늘까지 자로 댄 듯이 반듯하게 수직으로 생길 수는 없다. 더군다나, 제트기 구름은 먼저 생긴 부분이 바람에 더 흩어지기 때문에 양쪽 끝이 같을 수 없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그대로 있었다. 순간, 한 단어가 생각났다—“구름기둥”. 언젠가 당회장 목사가 설교에서 한 말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했다는 것을 들으면서 도대체 구름 기둥이 무얼까 했던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것이 구름기둥인지 무엇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아내를 깨워 보라고 할까 하고 보니, 너무 곤하게 자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일어나면 보라고 하지 뭐’ 하고 나는 이불 속에 엎드린 채로 기도를 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깜짝 놀라서 얼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내에게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엇!’ 나는 다시 놀랐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 글쎄, 언제 그런게 있었느냐는 듯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는데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정말 거짓말 같았다. 오직 바다와 하늘 뿐. 6시 20분 경이었다. 

 

오전에 관광한 후 점심을 먹고 오후에 공항쪽으로 가서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김영언 목사님과 다른 교회 식구들이 무척 반겨 주었다. 부활절 예배라고 특별하지는 않았다. 당회장 목사님이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하는 말이 많았을 뿐.

 

특별한 일은 그 다음 날인 월요일부터 시작되었다.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삼성1차벤더인 S사의 실제 경영자이던 김부사장으로부터 아침 일찍부터 전화가 왔다. 읍소라도 한 번 해보려고 그렇게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던 그가 아침 일찍부터 내게 친히 전화를 한 것이다. 놀랄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김 부사장이 한 말은 정말 믿기 힘든 말이었다: “장사장님, 그동안 힘드셨지요. 앞으로 저희와 잘 해 봅시다. 하 상부에게 특별히 지시해 놓았으니까, 필요한 일 있으면 하 상무와 잘 상의하십시오.” 하 상무는 김 부사장의 바로 밑에서 생산과 관리를 총괄하는 간부였다. 하 상무의 결정에 협력업체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있는데 또 낯선 전화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하 상무였다. “장사장님요, 뭔 일입니꺼? 부사장님이 아침부터 벽암(당시 내 회사 이름)을  도와주라카시는데 … 뭘 어케 도와줘야 합니꺼? 이따가 한 번 건너 오이소.”

 

그렇게 사업은 순식간에 거짓말같이 회복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기도에 응답이었다. 단순히 기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나의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그 구름 기둥은? 순종하는 자의 기도에 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그린 것이었는지 어찌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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