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교회
우리 교회 근처에 오래 된 한인교회를 다니시는 한 집사님이 우리를 방문했다. 노인 아파트 신청에 관한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노인아파트 신청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나를 중심으로 다 같이 앉아서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한 분이 정색을 하며 한 마디 해도 되겠냐고 했다. 그분은 내게, 왜 목사면 오는 사람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목사라면 당연히 복음을 전하는 일부터 가장 먼저 하고 세상적인 정보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말이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오신 분들에게 무턱대고 예배를 드리게 하는 것이 예의에도 맞지 않고 또 나아가서 예배 본연의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분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계시던 열 분 정도 되는 어르신들이 모두 그분의 말씀에 동의를 했다. 그렇게 해서 오후 2시 예배가 시작되었다. 지난 주일에 6번째 예배를 드렸다.
그 중에 한 분이 어제 나에게 매우 의미있는 말을 해 주셨다. 이 지역에 있는 오래된 한인 교회의 집사님이었다. 그 교회를 “우리교회” 혹은 “본교회”라고 칭하고 그 교회의 목사를 “우리 목사님”이라고 항상 칭하던 소속감이 강하신 분이었다. 그분으로부터 밤 좀 늦게 전화가 왔다. 먼저 용건을 마친 후에 자신이 이제부터 한미교회와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말을 했다. 그러면서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 이유는 그 집사님이 모시고 온 어떤 어르신의 변화였다. 3주 전에 그 집사님이 예배에 한 어르신을 모시고 왔다. 그 어르신은 5-6개월 전부터 그분이 다니는 그 한인 교회에 나오시는 분이라고 했다. 마침 노인아파트에 대한 도움도 받을 겸 해서 모시고 왔단다. 예배가 끝나고 남은 분들이 같이 대화를 나누는데 그분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너무도 딱하고 듣기로만도 맘이 편치 않은 사연이었다. 같이 있던 모든 분들이 그 어르신을 위로해 주고 힘을 주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그분은 수요일 성경공부에도 오시고 싶어했다. 내가 픽업을 해서 오셨다. 몇 분 되지 않지만 수요일 성경공부를 잘 마치고 또 그후로 같이 한 분들과 웃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후에 계속해서 예배도 나오시고 우리 교회에서 하는 이런 저런 일들에도 참여하셨다. 나와 아내는 유쾌하고 같이 하기 편하신 분이다 하며 점점 친해졌다. 그런데, 전화로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그 자매님은 00교회에서는 한번도 그렇게 웃거나 말을 많이 하거나 서로 어울리는 분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한미교회에 오시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즐거워하고 대화도 잘 하시고 웃으시고 하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목사님이 늘 강조하고 전하시는 ‘서로 사랑하라’는 메세지가 한미교회에 살아있기 때문에 그분도 한미교회에 오신 후로 그렇게 변화되신 것 같아요. 저는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이렇게 변화되는 것을 가까이 본 적이 없었는데 한미교회에서 보게 되었어요. 한미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제대로 한다는 뜻이겠지요?”
나는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동시에 그런 것을 유심히 보고 깨달은 그 집사님에게도 감사했다. 물론, 우리는 본래의 그분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이루어가시는 그 자매님에 대해서도 감사했다. 지금 그분은 세상적으로 보면 제대로 된 방 하나 얻을 수 없는 불우한 처지에 계시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인생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누리고 계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 즉 오직 성경만 따르는 것과,
거짓이 없는 진정하고 순수한 것만으로
우리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린다
다른 한국 교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하려했다면, 우리는 한인 예배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목사는 권위주의에 빠져 강단에 우뚝 서서 일방적인 설교만을 하고, 그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인지 목사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는 채, 목사의 권위주의에 눌리고 ‘교회’라는 시스템에 억눌려서, 아무런 반항도 못하는 덫에 걸린 짐승의 새끼처럼 눈만 껌뻑이며 듣기만 하는, 그런 예배도 아닌 의식을 우리는 행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 (디모데전서3장, 디도서1장)이 가르치는 바대로의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장로, 권사 직분을 줄 생각도, 집사 및 안수집사의 직분을 주고 그 사람들의 시간과 노동력과 재능을 남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이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몸소 실천하고 그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가득 채우려 한다. 목사의 설교는 서로 사랑하자는 권면의 말이고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오히려 나보다 남을 더 높게 여기고 섬기는 마음과 자세를 가지라는 훈육의 말이다. 가족관계에서건 교회관계에서건 어디서건.
주님의 계명과 그 죽으심으로 맺으신 언약을 다시 마음에 새기기 위해 우리는 매주 주의 만찬을 한다. 너희가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기 위해 이를 행하라” (고린도전서11:24-25)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예배에서 주님의 삶과 죽음 및 그분의 피로 맺으신 영생 부활의 언약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기를 우리는 한 주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의식이 아니다. 함께 떡을 떼며 진정으로 주님의 가르침과 삶을 통해 주신 가르침대로 살고 있는가를 살피고 또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잔을 들며 그렇게 주님의 가르침대로 산 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영원한 구원과 부활 그리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다시 확고히 한다. 물론 그 순간에 마음과 생각이 각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진지하고 진정하게 주님의 가르침과 약속 앞에 자신의 삶을 비추어 보는 시간을 우리는 매주 가진다. 주의 만찬을 성찬(Sacrament)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행사화 하여 일년에 두어 번씩 외적으로 거창하게 하면서 참가자들에게 특별헌금까지 요구하는 거짓 종교의식을 우리는 하지 않는다.
찬양도 그렇다. 우리는 누구는 하고 누구는 쇼를 보듯이 구경만 하지 않는다. 온마음을 담아 그 가사를 마치 기도와 같이 말하며,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께 향기로운 선물을 드리려 하듯이 함께 한다 (에베소서5:19). 성가대도 필요없고, 지휘자도 필요없으며, 더우기 어떤 악기도 필요없다. 성경이 예배 중에 악기를 사용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다는 천년 이상 묵은 터무니 없는 거짓말에 속아 아무 생각없이 하는 음악콘서트 같은 것을 우리는 예배 중 찬양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와 어울릴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 즉 오직 성경만 따르는 것과, 거짓이 없는 진정하고 순수한 것만으로 우리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린다. 그 예배를 통해서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의 심성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고 그 사람의 인생이 변하고 영적인 상태가 변한다. 물론 그 끝은 구원이다. 아니, 그 진실하고 진정한 예배를 온 마음과 몸으로 받아들이는 분들에게 구원은 이미 시작되었다. 입으로만 믿는다고 고백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터무니없는 거짓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거듭날 때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2:23). 그러나 무엇보다도, 의식과 행사만으로 가득한 우상숭배와 진배없는 예배도 아닌 종교의식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순종함으로받아들이고 그 말씀이 그들 마음과 인생가운데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말씀은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내듯이,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대로 조각되고 거듭난다. 이 얼마나 경이롭고 은혜롭고 아름다운 일인가?
그 집사님은 바로 그것을 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것을 그 자매의 변화를 통해 본 것이다. 교회 아닌 교회들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은 듣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이는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나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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