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분들을 만나면서 한가지 공통적인 것을 느낀다—얘기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 인생사는 물론, 이민와서 살면서 겪었던 일들, 그리고 최근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 등등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 노인아파트 등 정보를 얻기 위해 전화를 했다가도 보통은 30분 그리고 어떤 분들은 한두 시간을 전화로 얘기를 하기도 한다.
대화의 가뭄이 심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민 사회는 더욱 그렇다. 각자의 삶이 정신없이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을 뿐아니라,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 경제체제, 사회제도 속에 적응하고 그 속에서 편안한 대화의 상대를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주류 문화와 언어로의 소통능력의 부족은 물론 이곳 저곳에서 모인 이민자들로 구성된 한인 사회 안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 어려운 점이 더욱 더 대화를 잦아들게 한다. 각자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민의 삶을 살고 있는 가족에서도 이 대화의 가뭄은 얘외가 아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다. 대화는 이 사회적 존재인 사람이 사회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된다. 대화할 기회가 매우 제한적인 독거 노인들 중에 치매에 걸리는 환자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또 치매환자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가족들과 함께 단란하게 지내는 것이라는 의학보고서들이 이를 증명해 준다. 좋은 대화를 통해서 사람은 마음의 치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화의 상대가 필요하다.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어루만져 주며, 필요한 경우에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또 좋은 충고도 해줄 수 있는 마음이 통하고, 정직하며, 말을 옮기지 않는 대화의 상대가 필요하다. 그런 대화의 상대는 영적 정신적 치유를 주는 명약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을 열고 시간을 들여서, 대활를 통해 힐링이 필요한 우리 애틀란타
한인 이민자들의 대화의 벗이 되고자 한다, 주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이 교회 저 교회를 돌아다니며 찾는 것이 사실은 말이 통하는 대화의 상대인 경우가 많은 것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목사의 설교가 어떤가도 중요하겠지만 어찌보며 같이 신앙생활을 하며 삶을 공유하고 나아가서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중요한 것같다. 그러나 이민 교회들의 현실에서, 그런 마음이 통하고 대화가 통하는 영혼의 친구를 만나기는, 조금 과장을 보태서, 천국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한 교회를 10년 15년 다니신 분들도 주저없이 하는 말이 교회에서도 그렇게 친한 친구가 없다는 자탄어린 말이다. 처음에는 목사와 그런 대화를 기대했겠지만 턱없는 환상에 불과했다고 한다. 목사를 만나려면 면담신청을 해야 하고 그후 10여 일을 기다려 목사의 스케쥴과 마음이 허락할 때나 만날 수 있단다. 그렇게 형식과 격식을 갖추어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주절 주절 편하게 말할 수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 자신의 시간을 축낸다고 혼찌검을 낸 목사도 있었단다. 물론 참된 주의 종이었으면 어찌 그랬겠는가만은, 가짜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교회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민자들은 가정에서도 채울 수 없고, 어디서도 채울 수 없는 그 대화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해 줄 오아시스를 찾고 또 찾고 있지만 찾지 못한다. 그러다 결국은 포기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라. 엉뚱한 곳, 즉 비즈니스를 하는 세상적인 그런 교회들에서 그것을 찾으려 했기 때문에 못 찾은 것이지 없어서 못 찾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대화가 넘친다. 주님은 그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 사랑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당신의 참된 제자임을 알게 해 주는 유일한 징표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13:34-35). 즉,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주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이 살아있다. 그런 사랑이 성도 간에도, 성도와 목회자 간에도 그리고 심지어 모든 사람들을 향해 살아있다. 그런 진정한 사랑이 살아있는데, 마음 터놓고 하는 대화가 없겠는가? 사실, 대화가 없는 이유가 사랑과 관심이 없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러니, 그런 사랑이 있는 곳에 당연히 대화가 있고, 그것도, 넘치도록 풍성하게 있지 않겠는가? 우리 한미 그리스도의 교회는 물론 미국인 처치 어브 크라이스트들에도 정감있는 깊은 대화가 넘치는 이유는 바로 그 주님의 사랑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참된 크리스챤들은 세상에서 힘들고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대화의 상대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적 존재인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크리스챤들의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교인들 상호간에 대화가 많은 것에만 만족하고 자신들끼리만 그 기쁨을 나누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리스챤들은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그들이 영적 정신적으로 치유되지 않고서 복음에 순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크리스챤들의 하나의 중요한 사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애틀란타의 한인분들의 이야기를 주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들어주려 한다. 나와 아내는 시간이 날 때마다, 또 시간을 내서, 원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봉사를 시작하려 한다. 전화로든 혹은 만나서든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봉사의 내용이다. 물론 원하면 우리도 우리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들어주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만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분의 수가 얼마나 되겠는가만은, 우리 마음을 열고 시간을 들여서, 대활를 통해 힐링이 필요한 우리 애틀란타 한인 이민자들의 대화의 벗이 되고자 한다, 주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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