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호--시련 속에서 피는 꽃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그 당시에는 왜 그런지 무슨 목적인지 알 수 없고, 오히려 힘든 고난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그 뜻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감사가 있고, 끝에는 영적인 성장이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면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하여 언제나 기쁨과 감사가 넘칠 수 있는 삶이다, 비록 당시에는 그것이 죽을 것처럼 어려워 보일 지라도. 따라서, 믿는 자에게 오는 삶의 시련은 그의 믿음과 순종을 더욱 단련하는 용광로다. 그리고 보면, 믿음은 언 땅을 뚫듯이 시련을 뚫고 피는 꽃과 같다. 내가 제조업을 정리하는 과정도 나의 연약한 믿음을 연단하는 하나의 용광로였다.
공장 이전을 위해서 경산에 공장을 알아보러 다녔다. 친형님과 한 2주를 같이 돌아다녔다. 한번 경산에 올라가면 여관에서 1박 혹은 2박을 하면서 계속해서 공장을 알아보았다. 어떤 공장을 얻느냐에 따라서 인테리어와 시설비가 많은 차이가 났다. 먼저 올라가 자리를 잡은 한 동종업체는 인테리어 비용만 1억이 넘게 들고 설비하는데 또 1억이 들어서 회사가 휘청휘청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내가 그만 둔 뒤 약 1년 뒤에 망한 것같다). 그 공장을 견학차 가봤는데 돈은 많이 들였다지만 어두운 굴속 같아서 우리 업종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주차할 공간이 없어서 직원들은 차를 가지고 올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도 S사까지 몇 분 거리의 좋은 위치에 이미 끝내 놓고 정상가동을 하고 있는 공장을 보니 부러웠다.
경산의 진량산업공단의 김광수 계장을 만나게 되었다. 참 좋은 분이었다. 공장입주를 도와주는 것이 그분의 업무이기도 했지만, 인심이 좋고 마음 씀씀이가 발라서 말단 공무원이지만 주변에서 존경을 받는 분임을 알 수 있었다. 혹시 공장을 소개해 줄 수 있나 해서 공단 사무실에 갔다가 만났는데, 그때부터 내 공장 얻는 일을 자기 일같이 도와줬다. 매일 매일 후보 리스트를 가지고 와서 하루에 몇 군데씩 같이 돌아다니며 안내해 주었다. 그런 친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전자 업종 공장을 본 적이 없어서인지, 주로 엉뚱하게 크거나 혹은 인테리어 수리비가 지나치게 많이 들 공장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십수 개의 공장들을 돌아보다보니 점점 지쳐갔다. 하지만 공장을 얻는 일이 여간 중요하지 않기에 대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공장 때문에 기도를 많이 했다. 그때 두번째로 성경을 통독할 때였는데,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날도 돌아다녀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경산 인근의 모텔에 형님과 함께 들어가서 자고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침대에 누운 채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4장이었다. 4장 31절에 “…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를 속으로 읽는데 동시에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침대가 흔들렸다. 아직 잠이 덜 깨서 혼돈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부분을 읽을 때와 동시에 흔들림이 강하게 느껴졌다. ‘참 이상하다. … 지진이 났나? 근데 하필 내가 그 부분을 읽을 때 …?’ 등등 재미있는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왔다갔다 했다. 그러면서, 기드온의 이슬에 젖은 양털 표적 이야기가 생각나서 장난처럼, ‘만일 진짜 표적이면 다시 한 번 보여 주세요’ 하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았는데, 거짓말같이 다시 한번 바르르 진동이 느껴졌다. 너무나 이상했지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 속에서 ‘오늘 하나님께서 좋은 공장을 만나게 해 주시려나 보다’ 하는 기대가 들었다.
아침 일찍 김광수 계장이 약간 흥분해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확실한 후보가 있다고 한다. 심지어 몇 년 동안 쓰지 않고 비어 있어서 건물주인이 매우 싸게 임대를 내 놨다고 했다. 나는 ‘오, 바로 이걸 미리 알려 주려고 그런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만나자는 장소로 나갔다. 같이 후보 공장에 갔는데, 입이 떨 벌어지고 말았다. 어마어마하게 큰 공장인데, 일단 말대로 깨끗하고, 환하고 주차장도 무지무지 넓고 좋았다. 그런데, 철강 공장으로 쓰던 것이어서 온 사방 벽에 철제 빔과 크레인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 것들 안쪽으로 깨끗한 벽과 창들을 만들고 필요한 룸들을 만들고 생산 시설들을 앉히려면 못잡아도 두어달 동안의 중노동과 생 돈 2억은 들게 생겼다.
고맙기는 하지만, 너무나 어이가 없어, 엄청나게 실망감이 몰려왔다. 내색도 하지 않고 웃으며 “여기는 좀 그렇다”면서 돌아서는데 아침에 가졌던 기대가 생각났다. ‘흐흐흐, 아무것도 아니었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돌렸던 고개를 드는데, 눈 앞에 광채가 나는 듯한 반듯한 3층짜리 하얀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김계장에게 그 건물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공장의 사무실 건물이었다. 1층만 한 업체가 임대사무실로 쓰고 있고 2층과 3층은 비어 있고, 더우기 지하에 부엌이 딸린 식당 시설이 되어 있었다. 딱 우리 업종에 맞았다. 안에 들어가 보니, 사무실로 쓰던 곳이라, 따로 인테리어를 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 용도에 맞게 벽만 몇군데 손 보면 그만이었다.
임대사무실을 제외한 나머지 전체를 임대하는 데 얼마냐고 물었다. ‘월세가 1,000만원 정도만 했으면 …’ 하며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상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 놀라웠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500만원입니다. 너무 비싼가요? 아랫층 식당은 쓰시고 싶으시면 무료로 쓰셔도 됩니다.” 나는 속으로 ‘비싸기는 뭐가 비싸요. 거의 거져지요’ 하면서도 “좋긴 한데 … 화물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3층까지 계단으로 물건을 들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문제네요” 하고 슬쩍 한마디 던졌는데, “화물 엘리베이터는 입주하시기 전에 설치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다 승인이 나 있는데 임대가 나가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이게 왠 떡인가? … 아침의 그 신기한 일이 이런 좋은 공장을 만날 신호였었나보다’ 하며 “그럼 일단 가계약을 해 놓을까요? 몇 군데 더 돌아볼 데가 있어서 …” 하면서 살짝 튕기자, 그러자고 했다. 가계약금에 어울리지 않게 많은 돈을 걸었다. 가계약만 한 이유는 엘리베이터 설치를 얼른 하게 하기 위해서 였다.
그렇게 해서, 공장을 이전하고 새로이 시설을 다 하는데 고작 5천만원 정도 들었다. 공장은 아까 말한 동종업체와 벽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그 업체에 비하면 약 1억5천을 절약한 셈이다. 내가 예상했던 1억보다도 5천만원을 절약한 셈이다 (이 5천만원은 이미 사용한 상황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호에 나온다). 이전비용 2억을 들이고도 주차장도 부족한 공장을 얻은 김사장이 한턱 내라고 야단이었다. 그래서 주차장은 맘대로 와서 쓰라고 했다. 그렇게 시설도 아주 쾌적하고 깨끗하면서도 투자비도 절약해서 좋은 출발을 했다. 그러나, 정작 시련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일차벤더가 일거리를 충분히 주지 않았다. 삼성 핸드폰 생산량은 매월 늘어가는데도 우리 공장에는 일이 부족했다. 80여 명의 생산인원과 10여 명의 관리직 직원들이 출근했다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허다했다. 그 80여 명은 외주 인력 파견 업체 소속이었다. 김필성이라고 김광수 계장이 소개한 젊은 사장으로부터 인력을 공급받았는데 정말 예의바르고 선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산인원들이 허탕을 치고 돌아가면 자기 직원들에게 미안해서 내게 서운하기도 할 텐데, 그런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곧 잘 될 거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정말 어려운 어떤 달에는 외상을 해 주기도 했다. 말이 외상이지 1억 정도 하는 돈인데 말이다. 그 사람들 출퇴근용 대형 관광버스 운영비만 한달에 천여만원이 들었었다. 거기다 점심이라도 먹고 퇴근하면 식사비도 그대로 손해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끝내 더 잘 되는 날은 오지 않았다. 지금도 환히 기억난다. S사 김사장의 내 동갑내기 처남이 생산팀장이었는데, 그 친구는 노골적으로 나를 질시해서 우리 회사를 항상 물먹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혹시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S사의 직원들이 귀뜸해 주기를 그 김팀장이 우리 회사에 가는 물량을 자꾸 다른 업체들로 돌린다는 것이었다.
제조업은 그렇다. 시설도 중요하지만 인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인력을 확보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내 회사의 경우, 일거리가 없으면 운영비와 관리직들의 급여만 해도 한달에 7-8천만원 가까이 나갔다. 월 매출이 2억 정도 되어야 수익성이 있는데, 당시에는 매출이 1억이 될까 말까 했다. 그렇게 두세 달만 지나도 적자가 억단위로 누적된다. 결국 자금력이 항상 부족한 중소 제조업체는 도산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도산한 회사는 애물단지다. 생산시설을 철거하고 공장 건물을 원상복귀해 주는 데만, 우리 공장의 경우에도 2-3천만원이 들 것이었기 때문이다. 망한 회사에 2-3천만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그래서 중소기업 사장들이 망하면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빛과 억울함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인 것같다.
결국 내 회사도, 아파트까지 팔아서 돈을 밀어넣었지만, 불과 서너 달 만에 도산으로 치닫고 있었다. 피가 바짝바짝 말랐다. 그런데, 나중에 지나고 보니,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