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호--하나님의 강권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데 있어서 미적거리거나 망설이거나 혹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할 때, 그 사람도 모르게, 마치 무의식적으로 행하듯이, 자신이 생각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들도 생사를 가름하는 엄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 즉 하나님의 신의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래서 이사야나 예레미아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께서 “내 말을 네 입술에 두리라” 같은 표현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는데, 과히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게도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중 한번이 바로 사업을 끝내는 날에 있었다.
삼성전자의 일차벤더인 S사의 김사장과 마주앉아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었다. 그러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사업을 끝내는 사람처험 말을 하고 있었다. 김사장을 혼내고, 훈계하고, 경영에 관한 지식도 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굳은 인상을 하고 있었을 뿐, 대항하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도 있었고, 나더러 나가라고 할 수도 있었고 비서들을 불러 상황을 정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상만 어두웠을 뿐 마치 아버지에게 훈계를 듣는 아이처럼 간혹 차만 홀짝이며,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나의 장광설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아마 한 시간 반은 족히 해댔던 것 같다. 당시에 읽던 경영관련 서적에서 배우고 깨달은 이야기까지 한 후에 마무리 하려는데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가 의도하지도 않았을 뿐아니라 생각해본 일조차 없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던 것이다.
“당신 회사로 인해서 내가 이렇게 힘이 들었고, 이제 더 이상은 당신들과 비즈니스를 함께 할 생각이 없으니, 내 회사를 5억에 인수하시오.”
“Wha—t?” 어이없이 놀라운 상황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 손바닥을 위로 하는 제스쳐와 함께 미국인들이 하는 말이다. 당시 그 말을 한 나 자신에게 마음 속에서 내가 하는 행동이었다. 한번도 생각한 일조차 없는 일이기에 생각하는 내가 말하고 있는 나에게 황당해서 묻는 말이었다. 왜 5억이었나? 그것도 모른다, 그냥 나오는 대로 뱉은 말이니까.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금액이 그 상황에서 S사에 요구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금액이었다. 물론 시장가치로 보면 내 공장은 이미 그만한 가치는 없었다. 왜냐하면 망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금액은 회사의 시장가치라기 보다는 사업이 기본적으로 되고 있었다면 그 정도 쯤 될 거라는 가상적인 가치였다. 그때까지 한번도 회사의 시장가치를 생각해 보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 5억이라는 말에 나도 놀라고 있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말을 멈추고 나는 비로소 찻잔을 들었다.
김사장이 심각한 얼굴로 잠시 침묵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의 그 같았으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며 자기 말을 해댔을 사람인데, 그날은 성질은 났지만 꾹 참고 있는 순한 양같았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욱 놀라웠다. 정말 믿기지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장사장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제가 경리팀에 연락해서 장사장님 뜻대로 처리해 드리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주섬주섬 자기 바지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즉시 전화를 했다. 전화 속 목소리는 신생인 내 회사를 우습게 알고 얕잡아보던 바로 그 경리팀장이었다. 김사장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프레이즈 장사장님 공장을 우리가 인수하기로 했으니까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장사장님과 상의하도록 하세요.”
놀라고 어안이 벙벙한 것을 감추고 애써 태연한 척 하기 위해 약간 화가 난 것처럼 “그럼 나는 가겠습니다. 앞으로 사업 잘 하시기 바랍니다” 하는 말을 부러 퉁명스럽게 김사장에게 던지고 그의 사무실을 나왔다. 사무실을 나와 비서실을 지나자 마자부터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하지만 믿을 수 없이 좋은 딜이었다. 사람들에게 망해가는 것으로 보이는 공장을 5억에 팔다니. 실제로 S사로부터 회수할 납품대금까지 다 합하면 현금으로 약 7억5천이었다. 더군다나, 공장을 폐쇄하고 임대한 장소를 원상복귀하는 데 통상적으로 드는 약 5천만원을 더하면 약 8억의 가치를 확보한 딜이었다. 그때는 그 딜이 이렇게까지 큰 것인지 몰랐지만 5억만 받아도 충분한 딜이었기에 너무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무실로 돌아와 앉아서 김사장 사무실에서 있었던 과정을 되씹어 보는데, 놀라웠다. 아침에 8살짜리 한웅이가 한말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나는 S사와 사업을 그만 둘 생각이 아니었는데, 김사장에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처럼 말을 했고, 또 심지어 공장을 인수하라며 금액까지 제시하지 않았는가? 내가 한 일이 아니었다. 입과 몸만 내것이었지 생각과 말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것이었던 것같다.
S사 경리팀장이 득달같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대금 결제를 좀 먼저 해달라고 부탁하려고 그렇게 한 번 만나자고 해도 만나주지 않았던 '대단하신' 분이 누추한 내 사무실에 와서 내 비위를 거스리지 않으려고 굽신굽신하며, 내 지시를 받듯이 내가 하는 말을 업무수첩에 적어 갔다. 내 요구는, 그날 이후 모든 회사의 비용은 S사가 부담하고, 나는 직원들을 정리하고 공장의 인수인계를 해 주는 일만 해 주는 것으로 하고, 공장의 인수 대금은 일주일 안에 현금으로 계좌이체할 것, 그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 업무를 인수인계 받으러 온 S사 대리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전에 하던 것처럼 갑질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밖에 소란해서 나가 보니, 그 대리가 우리 직원들에게 훈계랍시고 하고 있었다. 이름표의 소속을 보니 총무부였다. 나는 그 대리 앞에서 S사 김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당신 직원이 분위기 파악 못하고 우리 공장에 와서 갑질 하고 있으니 당장 와서 사과시키고 데려가라.” 그 직원은 그 상황이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2-3분 후에 총무부장이 왔다. 그 역시 우리 회사를 얕잡아보고 갑질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내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고 자기 직원들을 끌고 갔다. 우리 직원들도 속이 시원해했다.
모든 직원들 손에 한달치 월급 정도의 해직보너스를 주고 눈물로 헤어졌다. 단 한사람도 서운함을 갖지 않았고, 모두 서로의 앞길을 축복해주며, 기분좋게 헤어졌다. 공장에 남아있던 기계들도 사무집기들도 그냥 그대로 놔둔 채로 우리는 몸만 빠져나왔다. 별로 좋은 것들도 없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다. 심지어 밀린 월세를 까고 나서 약 천만원 정도 남은 공장임대보증금도 그냥 놔두고 나왔다. S사에 말하면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까지 내 이익만 악착같이 챙기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제조업이 정리되었다. 불과 2주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제조업을 그만둔 것을 후회해 본 적도 없고, 그 과정에서 아쉬움으로 남는 것도 없다. 한웅이가 그날 아침에 한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맞았던 것처럼, 내 의도나 생각과는 달리 모든 것이 정말 한 방에 그렇게 해결되었다. 받은 돈으로 마지막 임금을 다 지불하고, 세금 등 공과금을 다 지불하고, 또 대출 받은 돈 등을 다 지불하고도 3억 정도의 현금이 남았다. “제조업을 하다가 망하면 쫄땅 망한다”는 말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달랐다. 망했지만 망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몫돈을 손에 쥐고 끝내게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를 통해서.
에필로그:
처음 그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가난한 집에서 자라서 큰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소심한 샐러리맨이었다. 처음 사업에 투자를 했다가 얼마 안되어 돈을 빼간 고등학교 선배가 어느날 내게 물었었다. “너는 이 사업에서 원하는게 뭐냐?” 사업에 대해서도, 돈에 대해서도 개념이 없던 나는 조금 생각한 후에 이렇게 대답했다: “사업하는 동안 가족들ㅇ 이 부족하지 않게 먹고살고, 사업끝난 후에 현금으로 3억 정도 남으면 성공한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