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2월에는 마무리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해의 마지막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생 중 한 해를 마치고 새 한 해를 어떻게 맞이할까를 생각하는 시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돌아보면 항상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것이 보통의 인생이다. 그러나 정작 더 큰 염려는, 생의 끝에 서서 삶을 돌아 보는 그 순간에도 이렇듯 아쉬움과 미련만 남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마무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해 왔느냐’ 보다는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다시 말하자면, 마무리에 있어서는 ‘이제까지’보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마무리: 화룡정점
마무리의 결정적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중국 고사가 화룡정점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 화가 장승유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는 서화에 탁월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한번은 지역의 절에서 벽에 용의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두마리의 용이 서로 몸을 꼬며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기개와 생동감이 넘치는 그림을 그렸다. 그 용들의 눈에 눈동자가 없음을 발견한 절의 주지가 눈동자를 그려 넣어 달라고 하자 장승유는, “만일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이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갈 것이기에 그리지 않았다”며 거절했다. 교만에 빠졌다며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자 장승유는 마지못해 용 한 마리의 눈에 눈동자로 한 점을 찍어 넣었다. 바로 그 때 그 용이 살아서 그림을 빠져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처럼 마무리는, 비록 그것이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도, 단순한 생동감을 생명력으로 바꾸어 주는 결정적 터치와 같다.
마무리에 관하여 한가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이 이미 지나간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즉,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어떻게 했는냐’가 아니라,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점이다. 사람은 과거에 대해 후회와 미련을 가질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다. 과거에 대한 참회 또한 새로운 출발을 위해 중요하지만 과거 그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이제까지’가 아니라 오직 ‘지금부터’다. 따라서, 좋은 마무리는 ‘이제까지’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지금부터’와 ‘이제까지’
좋은 마무리를 위해서는 ‘지금부터’는 ‘이제까지’와 달라야 한다. 설사 이제까지의 인생이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인생의 좋은 결말을 위해서는 달라져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분명히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이제까지는 나의 생각과 계획 나의 지식과 능력으로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는 인생의 주인이시고 우주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능력에 기대어 살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이것이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나의 생각과 능력으로 나를 중심으로 살아왔다면, 이제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생을 전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생에 대한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한다. 자신의 인생이 자신에게, 가족들에게, 나아가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거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자신의 생각과 능력, 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자신을 중심으로 산 인생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물론 자신이 위해서 희생했다고 생각하는 자녀들의 기억에 조차 아름답지 않게 남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람도 자기 중심적인 사람과 그 사람의 삶을 아름답게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생의 소망을 가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가지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인생의 마무리에 대한 꿈을 세우라.
“이 나이 되어서 무슨 꿈을 …”, “낼 모레면 80인데 … 소망은 무슨 …” 등등 비관적인 생각을 버리라. 비관은 겸손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패배와 자포자기이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신에 대한 소중한 소망을 저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머니의 복중에 지으실 때 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원대한 꿈을 꾸셨다. 지금까지 내 중심으로 사느라 하나님의 나에 대한 그 소망을 자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그것을 찾는다면 늦지 않았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복중에 지으실 때부터 우리를 아시고,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우리의 머리카락의 숫자까지도 세고 계시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가 아닌가. 그 사랑의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복중에 지으실 때 우리 인생에 가졌던 그 꿈, 그 원대한 꿈을 다시 찾으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지금이라도 그것을 우리가 찾는다면, 무엇이든 이루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루어 주시지 않겠는가?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소망을 하나님께 두었다면,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왔던 이제까지와는 결별하고 지금부터는 무슨 일에든 하나님의 방법을 택해야 한다. 이것이 이제까지와 지금부터가 근원적으로 달라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다. 세상적인 것에 삶의 목표가 있는 사람은 세상적인 방법을 택한다. 그런 사람은 세상적인 방법밖에는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목표는 설사 달성되어도 그 사람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 그 사람의 가족에게도 행복을 주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하지는 더더욱 못한다.
하나님께 둔 소망을 이루려면, 내 생각, 내 지식, 내 경험으로 해오던 이제까지와 달리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해야 한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첫자리에 모시고 하나님께 간구하라.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사람과 세상적인 수단에 의지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라. 세상에서 힘있는 사람을 찾기에 앞서 이 우주의 주인이시고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찾으라. 모든 것 앞에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일을 행하라.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이 산에게 명하여 저 바다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라. 매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라. 비록 나는 능력없고 부족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을 기뻐하시면 한번 눈깜빡임만으로도—비유적으로 하는 말이지만—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이 모든 노력으로 이룬 것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성하게 이루어 주실 수 있음을 믿으라.
마가복음에 나온 혈루병자 여인을 보라. 그녀는 12년 동안 세상적인 방법으로 병을 고쳐보려 하다가 마침내 파산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은 그녀는 이제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바로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었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하고 겨우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을 뿐인데도 즉시 병이 나았다. 이렇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의 방법을 택하라. 매일 매순간 믿음의 고백을 하고 믿음의 생각을 하고 믿음의 삶을 살라. 건강을 원하시는 분은, 오늘이라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의사를 보내주시고, 내게 맞는 약을 만나게 해 주심으로서 병을 치료되게 하실 수 있음을 믿으라. 나아가서, 우리 몸의 모든 장기들은 물론, 심지어 질병을 일으키는 병균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막을 수 없음을 믿으라.
어떻게 ...?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 라는 의혹을 품지 말라. ‘어떻게 홍해가 갈라질 수 있지?’ ‘어떻게 옷자락에 손을 댔다고 병이 나았지?’ 등의 의혹은 ‘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거야’ 라는 불신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다 알 수도 없고, 다 알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의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시면 우리의 믿음대로 이루어 주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유일한 신이시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고, 매일 매순간 믿음으로 우리 마음과 영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이제까지’는 잊으라. 그리고 오직 ‘지금부터’에만 집중하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가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최고의 인생의 마무리를 주심으로 ‘이제까지’의 인생도 완성시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해주실 마무리 보다 더 좋은 인생의 마무리는 없을 것이다. 영생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