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abolish the Law or the Prophets; I have not come to abolish them but to fulfill them. 18 For truly, I say to you, until heaven and earth pass away, not an iota, not a dot, will pass from the Law until all is accomplished. 19 Therefore whoever relaxes one of the least of these commandments and teaches others to do the same will be called least in the kingdom of heaven, but whoever does them and teaches them will be called great in the kingdom of heaven. 20 For I tell you, unless your righteousness exceeds that of the scribes and Pharisees,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성경해설
예수님이 먼저 말을 꺼내신 것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이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 것들을 완성하시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율법을 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의 작은 일부라도 빠 뜨리고 그렇게 행하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하신다. 다시말하면, 예수님도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 하시러 오신 것과 관련지어,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율법과 선지자를 온전히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를 온전히 지켜야 한다’는 말이 부담스럽게 들린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계속해서 “너희의 의가 서기관이나 바리새 인들의 의보다 더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심으로써, 그 율법이나 선지자를 온전 히 지키는 것이 의와 관련된 문제임을 말씀하신다. 나아가서, 그 율법이나 선지자를 가르치면서도 스스로 지키 지는 않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의 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의가 아님을 말씀하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 말씀의 주제를 ‘의’의 문제로 전환하시고 계신다는 점이다. 이 갑작스런 전환은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하시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그 갑작스런 주제 전환의 배경과 이유를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율법과 선지자를 온전히 행하고 가르치는 것’과 ‘의’의 관계를 찾아야 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주는 성경 몇 구절을 먼저 보자. 의가 무엇이고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구절들이다. 먼저, 창세기 18장 19절은 하나님의 백성의 첫 조상인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이유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데 그 목적 가운데 ‘의’가 핵심임을 알 수 있다. 즉, ‘그 후손들에게 ‘의’를 행하도록 명하게 하려 함’이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다.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나 더 보자면, 미가서 6장 8절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이 “의”임을 말해준다: “사 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이제 ‘의’는 무엇인가를 보자. 신명기 6장 25절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라고 한다. 그리고, 전도서는 12장 13절에서 인간의 해 아래서 모든 의무는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라고 결론짓는다. 이렇듯,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이고 그 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육적 및 영적 자손들을 부르신 목적이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어쨌길래 그들의 의만 가지고서는 천국에 갈 수가 없었을까? 마태복음 23장에 예수님께서 는 바리새인들고 서기관들의 위선을 실랄하게 지적하시고 혼내신다. 거기서 분명한 것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들이 의라고 생각했던 것은 예수님이 보시기에 의가 아니라 위선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의 의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3:4; 로마서 2:21-23). 이 원칙은 신약에서도 그대로 유효한데, 예를 들면, 요한일서 3장 7절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의를 행하는자라야 의롭다고 한다. 즉, 의를 ‘행하지’ 않으 면 의로운 것이 아니다. 즉, 오늘 본문도 말하는 바는 이와 같은데, 의를 ‘행하지’ 않으면 결코 바리새인이나 서 기관들의 의보다 더 나을 수 없고, 그래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요약하자면, 의는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것이다. 의를 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켜야할 계명이 무엇인지를 알 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려고 오셨다고 하셨으니, 예수님께서 명하시는 계명이 바 로 우리가 지켜야 할 그 계명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계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분명 히 말씀해 주실 것이다. 또 하나는 그것을 행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행하지 않아서 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가 그들의 의보다 더 낫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계명을 행해야 한다. 즉, 두 가지 중요한 주제가 제시된 것이다. 첫째는,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심으로 탄생하는 온전한 계명이 무엇인가 이고, 둘째는, 그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이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앞으로 전개될 설교 에서 답을 주실 것이다.
아직 그 계명이 무엇이고, 그것을 지켜 행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알기 전이지만 그것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일단 말하자.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지금까지의 설교를 되새겨 보자. 먼저, 5장 10절에서 의 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천국의 주인이 되는 복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자.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의임을 적용하면, 핍박을 무릅쓰고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신 것에 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대입하면, 제자라고 혹은 크리스챤이라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마치 짠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세상에 빛을 비추지 못하면 마치 짠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된다는 것에 적용을 하자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바로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는 것이다. 따라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사람들에게 선한 행위가 전달되고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볼 때, 5장 10절부터 20절까지에서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을 말씀하고 계신 것임을 알 수 있다. 5장 10-12절은 핍박을 무릅쓰고까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의 받을 복과 상을 알려주시고, 13-16절까지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다른 사람들 즉 세상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는 것임을 말씀하시고, 17-20절까지는 예수님의 계명을 행하지 않고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경고하신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완성하실 온전한 계명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그 계명을 온전히 행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화두로 던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