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그녀의 글쓰기의 모티브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 한국의 상황은 그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독재자들의 계엄령들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가진 국민들이 현재를 과거로 되돌리려 하는 반시대적 시도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사가 다 그렇고 인간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기본적인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쪽 땅에도 저쪽 땅에도 공평하게 햇빛과 비를 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5:45). 그 기본적인 은혜를 통해 그 은혜를 주신 것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시작입니다. 햇빛과 비로 맺어진 열매를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살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여 사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그 햇빛과 비가 맺어준 열매로 잘 먹고 살면서도 그 은혜에 감사하기는 커녕 그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는 것이 악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 다음의 더 큰 은혜가 결정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는 더욱 중요하고 큰 은혜를 주시지만, 악인에게는 기본적인 은혜 외에는 다른 은혜를 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처음에 받은 은혜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해서 받는 길입니다. 과거에 받은 은혜가 현재를 사는 우리를 돕고 구하는 것입니다. 마치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듯이.
이미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의 현재와 미래를 돕게 하기 위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A.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삶 속에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을 통해 헤아리는 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사랑 친절 도움을 받고도 그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인정하지 못하는 것을 어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윗도 그런 은혜를 모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이 광야를 지킨 덕분에 나발은 한 마리도 양도 잃지 않고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수확이 끝나고 다윗이 자신과 용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을 나발에게 청했을 때, 그는 자신이 은혜를 입었다는 것 조차 인정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여 오히려 다윗을 멸시했습니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사무엘상 25장 10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 은혜를 인식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정당하게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받은 은혜를 기억 속에서 찾아 헤아리는 것이, 은혜를 은혜로 인식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충분한 감사를 드리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정당한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은 생명과 같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네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어린 양들과 같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10개의 재앙을 내려 바로를 무릎 꿇게 하고, 홍해를 갈라 마른 땅을 걸어 건너게 하심으로써 구원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기억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이미 받았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했더라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는 더 크고 중요한 은혜를 주셨을 텐데, 감사는 커녕, 그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기억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과 불만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27-30).
히브리서 6장 4-8절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생명을 좌우함을 말해 줍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B.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믿음은 크게 두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머리로 믿는 지적인 믿음 belief 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을 자비로우신 아버지로서 그리고 구세주로서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어린 양들이 목자에게 의지하듯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이 만들어낸 체험적인 믿음 trust 입니다. 잠언 3장 5-6절이 이 믿음을 잘 표현해 줍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 믿음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애로우심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함이 없는 지적인 믿음은 알맹이가 없는 빈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멸시는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로서 의지하는 것에 반대입니다. 앞서 나발이 다윗에게 보였던 태도입니다. 다윗과 그의 용사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양 한 마리도 못지켰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도움에 감사하기는 커녕 다윗의 이름을 아는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멸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 노예의 처지로부터 해방되고, 나아가 그들을 추격하는 바로의 군병들로부터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기는 커녕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조차 하지 않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린 평가입니다: “그들이 왜 나를 믿지 않고 멸시하는가” (민수기 14:11).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참된 믿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억이 없이는 참된 믿음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받은 땅의 코앞에서 하나님에 대해 반역을 일으켜 결국 광야에 엎뜨러져 간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수많은 엄청난 은혜를 보고도, 기억조차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시편 106편 1-6절이 그 중 하나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찌어다 2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찌어다 3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찌로다 4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찌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찌어다 5그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찌어다” (시편 105:1-6).
혹시 우리 중에 믿음의 싸움을 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기억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고 의지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도달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C.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 기억할 수록 믿음과 소망은 더욱 견고해 집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에 대한 기억과 인정, 감사와 찬양이 쌓여 확신이 되고 확신은 담대함을 주며, 그 담대함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 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 사람을 강하게 해줍니다.
여호수와는 모세의 시종으로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붓듯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모세와 함께 했듯이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하신 것은 ‘모세에게 은혜를 준 것과 같이 너에게도 은혜를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모세를 통해 준 은혜를 기억나게 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여호수와에게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와의 그 확신은 담대함으로 나타나 가나안의 거민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복전쟁에 나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여호수와 1:5-6).
‘은혜의 부익부의 법칙’을 이해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을 기억하고 감사와 찬양으로 보답하는 사람은, 믿음과 소망이 더욱 견고해 짐으로 말미암아 더 큰 은혜를 받게 되고, 그 큰 은혜에 더욱 감사하고 더욱 찬양하고 더욱 믿고 소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억은 더 큰 믿음과 소망을 불러 일으키고, 더 큰 믿음과 소망은 더 큰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이와같이 하는 사람에게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사람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한 삶이 됩니다. 이것이 ‘은혜의 부익부의 법칙’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중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신 말씀이 이 원리를 말해 줍니다 (마태복음 13:12). 동일한 은혜를 처음에 받았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그 은혜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견고하여 져서 더 큰 은혜를 받는 반면, 자신이 받은 것이 은혜임도 모르고, 감사는 커녕 불평불만을 하거나 자신이 잘해서 된 것이라고 교만과 오만에 빠지는 자에게는 더 이상의 은혜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한 것도 이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16).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아도 삶은 어떻게든 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삶에는 믿음의 역사가 없고, 믿음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습니다. 은혜가 없는 삶은 마치 황무지에 돌이 굴러가는 것같이 버겁고 힘들고 밭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은, 마치 눈쌓인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돌과 같이 힘들지 않고 구르면 구를 수록 점점 더 커집니다.
따라서 매일 매순간 지금까지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매일 저녁 무슨 기도를 하십니까? 그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헤아려 보고, 감사드리고,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빼먹지 마십시오. 매일 아침 무슨 기도를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어제까지 우리의 삶에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도 주실 은혜를 소망하고, 은혜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잊지 마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은 “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이미 받은 은혜로 인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기도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범사에 풍성하게 이루어 주심을 감사하라’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 내고,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이것이 참된 믿음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에 가득하게 하는 길입니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의 삶은 부드럽고 순조롭게 앞으로 나아갈 뿐 아니라, 앞으로 가면 갈 수록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