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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어떤 분이 평생을 기도의 응답에 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답변: 기도하는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에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기도의 응답이 없다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적잖이 잃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는 기도에 응답을 주시고, 언제는 주시지 않는 분일까요? 그렇다면, 기도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특권이라고 하며 자랑할 만 한 것일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과연 모든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가와, 기도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얘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필요한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말하면, 살펴보아야 할 것은, 첫째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와 둘째는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기도와 기도의 응답은 모두 영적인 세계에 속한 것으므로 이들에 대한 답은 오직 성경에서 외에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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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도 기도를 할 수는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귀기울이시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는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원칙은 먼저 야고보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1장 6-7절은 말하기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이뿐 아닙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유대인들이 한 말이기는 하지만, 말하기를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9:31).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의 기도를 듣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인 의인들에게만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은 성경 전편에 걸쳐 확인되는 원칙입니다 (베드로전서 3:12참조). 따라서, 기도의 응답 여부를 논하기 전에 누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은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사람은 반드시 크리스챤이어야만 할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No도 Yes도 가능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아니지만 예외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이 하는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야고보서의 말씀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참된 크리스챤이 아닌 사람은 대부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더라도, 하나님의 보시기에 ‘구원에 합당한 믿음’(야고보서 4:14)이 아닌 한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없고, 그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을 것은 당연합니다. 이와같이, 믿음이 있다는 것은 표면적인 의미로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야고보서  1장8절은 말하기를, 믿음이 없이 기도하는 자를 가리켜,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전체를 보면,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지 않고, 세상적인 것에도 마음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6장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무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원칙과 맥을 같이 합니다. 즉, 마음이 오롯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닌 한 결국 세상과 재물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말이고, 다시 말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세상에 소망을 조금이라도 남겨두고 매달리고 있는 사람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를 해도 그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야고보서 5장16절이 말하는 “의인의 기도”도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믿음의 기도와 같은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의 기도를 들어줄까 하는 문제에서, 그러므로, 먼저 중요한 것은 그런 믿음 즉 하나님과 구원을 향해 오롯이 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아직 크리스챤이 아니더라도, 구원받고자 하는 열망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들어주실 것입니다. 예를들면, 사도행전 10장에 소개된 이방인 고넬료는 아직 크리스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크리스챤이 되지는 않았었습니다 (1절). 그러나, 그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2, 4절).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 크리스챤이 되었습니다 (48절). 고넬료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은 크리스챤이 아니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사람의 기도는 들으시고 응답해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에도, 하나님을 향한 오직 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에만 하나님께서 귀기울이신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크리스챤인 사람들도 마음이 갈라져 세상적인 것에 소망을 두고 하는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데 (야고보서 1:8),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이중적인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들어주실 이유도 까닭도 없습니다. 이것은 곧이어 보겠지만 무엇을 목적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됩니다. 즉, 세상적인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을 잘 아실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중요한 원칙을 말씀하고 계시지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세상의 욕심과 욕망 즉 정욕은 세상적인 것에 마음이 팔린 자들의 본질입니다. 소위 크리스챤이라고 하면서도,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만 정하지 않고 세상적인 것에 대한 욕망을 아직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앞서 본 마태복음 6장24절의 말씀에 따라, 아직 세상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에 대하여는 무엇일까요? 야고보의 다음 구절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간음하는 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4:4). 그들은 하나님만을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 등 뒤에서 세상의 신과 간음하는 자들이요, 따라서, 하나님을 속이고 능멸하고 멸시하는, 하나님의 원수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추악한 원수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리가 있을까요?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그들의 간음행위, 즉 세상적 욕망을 충족하는 것들을요. 많은 가짜 크리스챤들이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자기 욕망대로 살고 있지만, 심판날에 밝혀질 것입니다, 그들이 사탄에게 속았다는 것이.

 

기도의 응답을 통해 이루어 주시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통해 그 자녀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주시지 않을 것이 무엇인지는 이미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이 누구든—크리스챤이든 아니든—세상적 욕망을 채워주는 것을 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은 야고보서 말씀으로 이미 분명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기도의 응답으로 주신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더욱 악의 구렁텅이에 밀어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랑의 하나님이 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통해 그 자녀들의 삶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이 구원이라는 것을 이미 아시는 분입니다 (디모데전서 2:4). 사람은 ‘구원도 좋지만 세상의 것 중에도 좋은 게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사랑의 화신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사람이 받을 만하기만 하다면, 왜 그 가장 좋은 것인 구원을 주시려 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7:11)? 그것을 오죽 주기를 원하셨으면, 그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주시려 하셨겠습니까? 따라서, 받아야 할 사람은 그닥 달갑게 생각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가장 열망하는 선물은 오직 하나 바로 구원입니다.

 

따라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응답으로 오직 구원에 도움이 되는 것들만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럼, 무엇이 구원에 도움이 됩니까? 물질적 육체적 세상적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은 당연히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구원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구원에 필요한 지혜와 영적인 성숙과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첫째, 구원에 필요한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는 후히 주신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5). 물론 믿음으로 한 마음으로 원하는 사람에게요. 그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를 전심으로 찾을 때 그것을 부족함 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6-17).둘째, 영적인 성숙을 주십니다. 빌립보서 1장9절에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인들의 영적인 성숙을 위해 하는 간절한 기도가 나타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15-19절에 또한 사도 바울의 에베소 크리스챤들이 영적인 눈이 뜨이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영적인 눈은 믿음의 눈으로서 결국 영적으로 성숙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이기에 이 기도 또한 영적인 성숙을 위한 것입니다. 세째,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힘입니다. 에베소서 3장14-21절까지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크리스챤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16절).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믿음을 통한 능력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은 베드로전서의 도입부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베드로서는 임박한 핍박을 이겨내도록 격려과 힘을 주는 편지이기에 이러한 능력을 구하는 기도가 간절했습니다: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13-15).

 

구원의 지혜, 영적인 성숙,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 이 세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니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 뜻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기도를 통해서 성경 말씀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계획과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다음으로, 기도를 통해서 구하고 얻을 것은 구원을 위한 영적인 성숙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격이 자라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영적으로 성숙한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또 나아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기도의 응답과 관련해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세상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은 어떤 것도 기도의 응답으로 주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크리스챤들은 그런 것들을 위해서는 기도해서는 안 될까요? 이에 대해서는 ‘예’라고도 ‘아니오’라고도 대답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크리스챤들도 물질적 세상적인 것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정해준 명확한 조건이 있습니다. 필요를 위해서가 그것입니다. 필요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지키며 사는 데 필요한 만큼의 필요를 말합니다. 이 필요를 넘는 것은 이미 욕심이고 세상적 정욕을 위한 것이므로 올바른 기도의 목적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서 그 자녀들에게 이런 필요들을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필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합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기도의 예에서 "일용할 양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태복음 6:11).

 

이와 달리 '아니오'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자녀들이 이 필요를 아뢰기 전에 이미 아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는 한 모두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6:32). 예수님은 이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의식주 같은 것들은 이방이들이나 구하는 것들이라고까지 말씀하셨지요 (6:32).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열심히 구하고 행하며 사는 참된 크리스챤들에게는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필요를 기도로 구할 필요조차 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첫부분에서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주므로 그에 대한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이 분명히 말하듯이,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전심전력으로 행하고 구할 때, 필요를 채워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필요를 구하는 기도는 필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따라서, 참된 크리스챤들에게 한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필요와 관련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기도마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결론: 기도의 응답이 없다?

그렇다면, 처음 의문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은 누구에게는 기도응답을 주고 누구에게는 주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 기도가 구원과 하나님의 뜻에 관한 영적인 것들에 대한 기도인 한 반드시 응답을 주십니다.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인가?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귀 기울이실 만큼 오직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서 오매불망 주시고자 하시는 구원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둘째는, 자신이 구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실 성질의 것인가? 즉, 나의 세상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닌가?

 앞의 두 가지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도 기도의 응답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만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다시 이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지혜, 영적인 성숙,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주시고 계시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나 그것을 보아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영적인 것들은 보이지 않으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보지 못한다는 말이고,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영적인 욕심이 지나치다는 뜻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분은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원한다면, 고넬료의 예를 본받아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로 거듭난 참된 크리스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과 이전의 죄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합하여 죽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의롭게 살기 위해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6:3-4). 오직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났을 때, 영적인 눈이 떠져서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도 알게 되고, 무엇이 응답인가도 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영적인 선물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기도의 특권도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깨닫는 영적인 축복도 아무 조건 없이 아무렇게나 오지 않습니다. 그런 영원한 구원의 축복은 오직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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